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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오세훈 서울시장이 19일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당초 입장을 재확인했다.
서울시가 전날(18일) 예정했던 ‘주민투표 동의 요구안(서울시장 발의)’ 제출 일정을 연기하자, 각 언론은 오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사실상 철회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 놓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주민투표 철회’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민투표 추진 입장은) 확고부동하다”며 “다만 정지작업 필요해 조금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루 이틀 만에 마무리 될 일이 아니고, 수개월 간 서명을 받고 절차를 진행하고 여러 차례 의지를 전달하고 하는 프로세스가 많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정지작업’이란 시의회와의 협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 즉 시의회가 주민투표 동의안을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이 확인될 때까지 동의안 제출을 미루고 최대한 협상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 시장은 시의회에만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가 ‘수개월 간 서명을 받고’라고 밝힌 것은 시의회가 끝내 ‘주민투표 동의안’ 처리를 해주지 않을 경우 서명을 통한 주민발의 형태로 주민투표를 관철한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담겨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서울시민 중 투표권자의 5% 이상(41만8000명)이 서명, 요구하면 시의회 동의 없이도 주민투표가 가능하다. 이미 오 시장을 지지하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공학연) 등 일부 시민단체들이 서명운동을 통해 투표를 성사시키겠다고 나선 상태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오 시장을 지지하는 10여개 단체가 모여 ‘무상급식반대 서명을 위한 시민단체연대모임’(가칭)을 꾸리기 위해 준비위원회 구성까지 모두 마쳤다.
특히 공학연은 오는 22일 ‘주민투표 청구’에 대한 첫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이후 각 단체별로 서명운동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오 시장의 말 한마디로 인해 서울시민들이 ‘무상급식’을 둘러싼 찬성자와 반대자들이 서로 패가 갈려 질펀한 패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다.
참 걱정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오 시장의 이런 ‘오기’와 ‘고집’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친이계 정두언 최고위원은 이날 “아주 강경한 방법으로 갈 것까지 가야 되면 몰라도 그 전에 타협이 이루어져야 된다”며 주민투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지낸 권영세 의원도 같은 날 “저는 개인적으로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민주당의 이른바 ‘무상복지 시리즈’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정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에 대해 “그대로 하다보면 국민들이 결국 엄청난 부담을 가져야 되는데 지금 국민들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부담을 가져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세상 일이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지금 민주당은 이미 그 단계에 와 있다. 국민들도 알아차렸다”고 맹비난했다.
권 의원 역시 “민주당식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훨씬 많이 걷혀야 되고, 그런 점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오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무상급식 문제는 다르다는 것.
권 의원은 무상급식 문제는 우리 헌법상 무상으로 제공하게 돼있는 의무교육 서비스의 일환으로 봐야 된다는 차원에서 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오 시장의 ‘주민투표 제안’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소속 정당의 지지 없이 오 시장 홀로 ‘무상급식 찬성’ 여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어림없는 일이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시장의 오만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오 시장은 1000만 서울시민을 위해 아집(我執)을 버리고, 시민의 대의기관인 서울시의회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타협점을 모색해 주기 바란다.
어쩌면 오시장의 이런 고집스런 행보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을 더욱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잘해야 반타작’이라고 하던 한숨 소리가 어느 사이엔가 ‘반에 반타작만 해도 성공’이라는 한탄의 소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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