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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20일 “온 국민 복지는 재원이 핵심”이라며 대권주자들이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복지재원’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이른바 ‘복지 재원 담론화’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셈이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복지재원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복지’가 대세다. 그러나 옥석은 가려야 한다”며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공청회를 통해 복지 이슈를 선점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무상복지 시리즈’를 잇달아 발표한 같은 당 손학규 대표 등 다분히 여야 대권 경쟁자들을 의식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정 최고위원이 여야 대권 주자들 가운데 최초로 ‘복지재원’ 담론화를 시도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정 최고위원의 “‘복지’는 취약계층만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따라서 복지의 방향은 보편적 복지가 돼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특히 복지는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부여한 사회적 기본권이므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복지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그러자면 반드시 재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민주당은 최근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 이른바 ‘무상 복지 시리즈’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에 “4대강 예산 같은 것을 복지에 투입하면 된다”는 황당한 답변을 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기 위해 정작 필요한 곳에는 예산을 책정하지 못했던 우(愚)를 범했던 것처럼, ‘무상복지 시리즈’를 위해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한국형 복지’는 한마디로 ‘효율적 복지’다.
한정된 예산의 범위내에서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비효율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대폭 바꿔야 한다는 것.
반면 민주당의 무상시리즈 형태의 복지는 지출을 대폭 확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재원마련 방안이 동시에 제시돼야 한다.
정 최고위원은 그 방안으로 ‘부유세’와 ‘목적 소득세’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그는 부유세를 통해 마련할 수 있는 재원에 대해 “최대한 넓게 범위를 잡아도 부유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세수는 10조원 가량”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에서 제안하고 있는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데에만 연간 16조원 이상이 투입돼야 한다.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다.
결국 부유세를 신설하더라도 이 모든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다.
그래서 정 최고위원은 ‘사회복지 목적세’도 함께 도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우리나라는 GDP 대비 소득세의 비중이 4.4%에 불과한데, OECD 국가들의 평균 비중은 9.4%다.
GDP 대비 5% 포인트의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세입구조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일 경우, 2010년 우리나라의 GDP를 약 1100조 원으로 보면, 소득세에서만 약 55조원의 세수가 발생한다는 것.
추가로 늘린 세수의 대부분은 복지에 사용할 것이므로 누진적 직접세인 소득세에 일정세율을 누진적으로 부가하는 방식의 ‘사회복지 목적세’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과연 정 최고위원의 이 같은 세수 추정치가 얼마나 맞아 떨어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증세 방안을 대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국민들 앞에 제시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언론은 물론 여야 정치권과 온 국민이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무상 복지 시리즈’를 잇따라 발표하는 민주당 내에서라도 이 문제를 가지고 활발하게 논의해 주기 바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복지재원 방안을 제시하는 데 대해 ‘역풍’이 우려돼 주저한다면, 차라리 ‘무상 복지 시리즈’ 발표를 철회하는 게 옳다.
정 최고위원의 말마따나 “재원대책 없는 복지 확대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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