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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그동안 설마 했던 일이 25일 사실로 확인됐다.
이른바 ‘MB 막후정치’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필자는 전날 <與, ‘개헌의총’ 연기 수상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그 배후에 MB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한 의구심을 보인 바 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고 해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막연한 의구심과 ‘팩트’로 확인된 사실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이를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5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청와대 인근 삼청동 안가에서 여당 4역(안상수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 심재철 정책위의장, 원희룡 사무총장)과의 만찬에서 “지금 현재 헌법은 만들어진 지 30년이 다 돼 가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변화된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개헌 논의를 당에서 제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오보’가 아니라면 이는 ‘팩트’다.
이에 대해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통령은 슬쩍 지나가는 말로 말씀했고, 평소 하던 말씀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의 이같은 해명이 결국 <조선일보>의 보도가 ‘오보’가 아니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23일 당정청 만찬에 대해 각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초 만찬은 26일로 예정돼 있었고, 이를 취소한 것은 청와대였다.
그래놓고 청와대가 느닷없이 만찬을 23일로 앞당겼으니, 기자들이 그 배경을 궁금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만찬을 갑자기 23일로 앞당긴 것일까?
이대로 가다가는 25일 열리는 한나라당 ‘개헌의총’이 자신의 뜻대로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실제 홍사덕 의원 등 당내 친박계 의원들이 ‘개헌의총 보이콧’을 선언하는가하면, 개혁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민본 21’ 소속 친이계 의원들까지 ‘개헌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그들 당 4역에게 개헌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을 것이고,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분노한’ 이 대통령 앞에 머리를 조아리던 이들은 이를 일종의 ‘개헌지침’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것이 한나라당 최고위원회가 만찬 다음날, 그러니까 당초 개헌의총이 열리기로 했던 하루 전날에 다급하게 ‘설 연휴 이후로 개헌의총 연기’라는 결정을 내린 배경이다.
특히 단 하루만 예정됐던 일정을 사흘간 대폭 늘려 잡은 것을 보면, 당 지도부, 즉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 대체 MB는 어떤 개헌을 원하는 것일까?
대통령의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발언을 보면 MB가 어떤 개헌을 원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장관은 바로 전날 세종문화 회관 세종홀에서 헌법개정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장관이 주장하는 분권형 개헌은 이원집정부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원집정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은 사실상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고,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끼리끼리’ 모여앉아 선출한 총리가 실권자가 되는 제도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현실에는 맞지 않다.
국민여론 또한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크다.
그렇다면, MB가 이원집정부제를 추진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이재오 장관이나 안상수 대표 등 개헌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 웃기는 얘기다.
사실 이런 명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 대통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그의 주변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털어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는가.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나 그의 주변 인사들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했다는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MB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이고, 그래서 각종 폐해가 발생하고 있는 뜻이 된다.
이거야 말로 누워서 침 뱉는 격 아니겠는가.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어쩌면 MB는 러시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실권을 가진 총리가 된 푸틴, 즉 ‘한국판 푸틴’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꿈 깨시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민도가 그런 몰염치한 일을 묵과할 만큼 그리 낮은 수준은 아니다.
실수는 지난 대선에서 MB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그 한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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