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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대학 강단에서 미래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엠바고’ 문제에 대해 학생들과 상당히 깊이 있는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 내려졌다.
국익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엠바고’는 단지 정권을 보호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
특히 특정 언론에 의해 보도된 내용이라면, ‘엠바고’는 이미 파기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실제 청해부대의 피랍 해적 진압 및 선원 구출작전과 관련해 1차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을 보도했던 부산일보와 미디어오늘, 아시아투데이에 대해 국방부가 정부 모든 부처에 해당 언론사 기자의 출입금지 및 보도자료 제공중단 조치를 요청했는가하면, 청와대는 아예 출입기자의 등록을 취소하거나 출입정지 조치를 하고, 해당 언론사에 이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정말 황당하다.
1차 작전이 실패했다. 과연 이를 보도한 것이 국익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것인가?
아니다. 인질의 생명과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작전의 실패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 군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고, 그로 인해 작전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임무다. 2차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1차 작전의 실패요인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게 그리 나쁜 일인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군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침묵하는 언론이 이상한 언론이다.
한마디로 엠바고가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 ‘엠바고’가 정당한 것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이 사실은 이미 부산일보가 보도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엠바고’는 파기된 것이다. 따라서 뒤이어 기사를 작성한 미디어오늘과 아시아투데이에게 엠바고 파기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부처가 이토록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언론 길들이기’의 일환인 것 같다. 먼저 만만한 언론사를 골라 제재를 가함으로써 다른 언론사들에게 경종을 울리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물론 정부가 자신들의 입장에 협조하지 않은 언론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출입기자 등록을 취소한다는 것은 아예 언론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정상은 아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정부 입장에 반하는 보도를 하는 매체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언론과 관련,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하자.
최근 종합편성채널 사업자가 선정됐다.
예상했던 것처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매일경제까지 포함이 됐다.
그러다보니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언론의 충성 경쟁에 따른 포상’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종편이 하나가 아니라 무더기로 선정되다보니, 제한된 광고 시장에서 자칫 업계 전체가 공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지금은 축제 분위기겠지만 이명박 정부가 건넨 독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실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조중동매’가 이명박 정부에게 어떻게든 먹고 살 거리를 만들어 줘야 하지 않느냐고 떼를 쓰게 되고, 결국 방통위는 종편에 전문의약품과 의료기관 광고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국민의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의약분업까지 실시한 마당에 방송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약 선전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또한 전문약 광고로 인해 고가의 불필요한 수술이나,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심화되어 국민에게 비용부담이 증가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이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조중동매’만 살릴 수만 있다면, 국민의 건강 따위는 좀 망가져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방안이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언론을 대하는 태도다.
‘조중동매’에게는 종편이라는 선물로도 모자라 전문의약품과 의료기관 광고허용이라는 ‘떡고물’까지 얹혀주면서 ‘미디어오늘’과 같은 비판적인 매체에 대해서는 ‘엠바고 파기 책임’ 운운하면서 몽둥이로 내려치는 모습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런다고 오는 레임덕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헌 반대 여론이 찬성으로 돌아 서는 것도 아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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