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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26일 국민들 앞에 머리 숙였다.
그러나 그는 이날 사퇴의사를 표명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을 화합시켜 집권여당으로서 막중한 책무를 다할 수 있게 앞장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사퇴론을 일축하면서 앞으로 당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안상수 대표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가뜩이나 차기 총선에서 ‘잘해야 반타작’이니, ‘1/3도 어려울 것’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마당에 당 대표가 `보온병 포탄’, `룸살롱 자연산’ 등 잇단 설화(舌禍)로 당의 이미지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수도권 출신의 구상찬 의원은 “지금까지 모두 248개의 연말 송년 모임을 다녀왔다. 어제는 코피까지 나더라.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면 뭐 하나. `자연산’ 발언으로 한 방에 날려버렸는데”라고 허탈해 했다.
또 다른 수도권 출신 의원도 “안 대표는 더 이상 전면에 나서면 안 된다. 기능상실이다. 조롱의 대상밖에 더 되겠느냐”고 안 대표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안상수 대표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실제 `보온병 발언’ 이후 국회를 방문한 초등학생들이 자신을 보더니 “어, 보온병 아저씨다”라며 따라다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안 대표가 지난 24일 예정했던 아동복지시설 봉사활동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26일까지 두문불출하다가 이날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쯤 되면 그는 이제 당을 이끌어갈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허수아비’ 대표나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당 대표의 말을 귀담아 듣겠는가. 특히 선거 때 어느 정신 나간 후보가 이런 당 대표에게 지원유세를 요청하겠는가.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보온병 대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나라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이계 주류 입장에서 대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친이계는 `대안 부재론’ 때문에 교체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선출된 안 대표가 물러날 경우,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어 당헌상 60일 이내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임기 2년)를 뽑아야 한다.
그럴 경우 비록 친이 직계가 아니더라도 범(汎)친이계인 홍준표 최고위원이나 정몽준 전 대표의 당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충성도 면에서 친이 직계에 비해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더구나 친박계 인사 가운데 홍사덕 의원 등 거물급이 경선에 나설 경우, 친박계 당대표 선출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조기레임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당 대표가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울 경우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당 주류 입장에서는 그게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이재오 특임장관을 전면에 내세울 수도 없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인 이재오 장관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친박 진영이 총력전을 펼칠 것이고, 결국 당이 분당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박 진영이 조기 전대론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장관의 등장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파출소(안상수)를 피하려다 경찰서(이재오) 만날 수도 있다”며 조기전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재오 장관측도 자신들이 안 대표 체제를 흔들려 한다는 인상을 줄까 봐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보온병 대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날 안 대표의 체제가 유지되는 것에 대해 “당내에서도 (안 대표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대안으로 노골적인 친이 인사나 청와대와 각을 세울 인사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정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반드시 당 대표를 바꿔야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나 친이계 입장에서 보자면 ‘대안 부재’인 이런 상황이 정말 답답할 노릇일 것이다.
여하간 여권 친이계 주류의 선택은 이제 분명해 졌다.
그들의 선택은 국민이 아니라, MB다. 그 결과가 다음 총선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장담하건데 ‘보온병 대표체제’로는 ‘반타작’도 어렵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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