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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한동안 잠잠하던 이재오 특임장관이 27일 느닷없이 개헌드라이브를 다시 걸고 나섰다.
이 특임장관은 이날 방송사 보도국장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내년 초부터 개헌 문제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한국형 분권형 대통령제’를 포함해 선거구제 개편 등 개헌을 위한 움직임을 내년부터 본격화하겠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내년 상반기 안에는 (개헌 문제를)마무리 짓겠다”고 개헌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앞서 그는 지난 23일에도 언론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 “여야가 합의만 한다면 60일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바 있다.
그는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은 허수아비이고, 총리가 사실상의 실권자’라는 주장에 대해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내각이 다 맡겠다는 걸로 잘못 아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헌 필요성에는 다들 동의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의 말은 사실인가?
먼저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은 허수아비’라는 용어를 최초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람이 바로 필자다. 그리고 그런 내용의 칼럼을 수차에 걸쳐 게재한 사람으로서 그의 반박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만 전담하고, 다른 모든 분야는 국회의원들이 선출한 총리가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가 바로 이원집정부제다.
그렇다면 당연히 총리가 사실상의 실권자가 되는 것이고,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장관이 “개헌 필요성에는 다들 동의를 한다”고 밝혔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4년 중임제’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장관이 최근 ‘4년 중임제+분권형제’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것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장관의 이 같은 제안은 이미 필자가 1년 5개월 전에 “친이계가 ‘4년 중임제+분권형제’를 제안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따라서 그의 제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장관이 ‘한국형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명명한 것도 알고 보면, ‘4년 중임제+분권형제’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특히 이 장관은 “여야가 합의만 한다면 60일이면 충분하다”고 발언했는데, 불행하게도 이미 여야 합의는 물 건너갔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한나라당이 다수의 힘을 앞세워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한 마당에 민주당이 개헌을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 때 민주당내에서도 분권형 개헌논의가 활발했던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원내대표 경선 당시 ‘분권형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박지원 원내대표와 막판 결선투표까지 올라갈 만큼 높은 지지를 받았었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 박지원 원내대표는 물론 이낙연 사무총장 역시 분권형 개헌론자들이었다.
그러나 여당의 예산안 날치기 처리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지금은 민주당내에서 그 누구라도 ‘개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는 ‘국민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돼 있다. 한마디로 민주당내에서 ‘개헌’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여야 합의는 어디까지나 이 장관 개인의 희망사항 일뿐이다.
그런데도 왜, 이 장관은 개헌을 자신의 정치적 화두로 선택한 것일까?
아마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가를 자신이 설계한 밑그림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보겠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즉 단순히 ‘킹메이커’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자리를 노리는 구상이 숨어 있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12월 넷째 주 실시한 주간 정례조사 결과를 보자.
이번 조사는 지난 20일~24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가구전화와 휴대전화로 조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1.4%p였다.
조사결과 박근혜 전 대표는 보수계 유력주자군 선호도에서 32.2%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 뒤를 이어 김문수(8.9%), 오세훈(7.7%), 이회창(5.9%), 정몽준(5.5%), 홍준표(4.3%), 남경필(3.2%), 원희룡(2.8%)순이다. 기타/무응답은 29.5%다.
여기에 이 장관은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가까스로 그는 보수계 예비주자군 선호도 조사에서 이름이 나오긴 했으나 그 결과 역시 영 신통치 않다.
실제 그는 나경원(18.5%), 안상수(10.4%), 김무성(9.0%), 권영세(6.6%) 의원보다도 낮은 6.1%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보자면, 차기는 고사하고 차차기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제발 꿈 깨시고, 이원집정부제 개헌 드라이브로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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