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박정희 리더십’

관리자 / / 기사승인 : 2011-03-20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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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한 때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박정희 비판’이 마치 시대정신이나 되는 것처럼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중신문 편집위원장 출신인 필자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물론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그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많은 상처를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가 이룩한 수많은 업적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새롭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매우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오는 4월 1일 미국 하버대에서 발간한 ‘박정희 시대(The Park Chung Hee Era)’란 제목의 논문집이 일반에 시판된다고 한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와 김병국 고려대 교수가 공동 편저한 744쪽의 방대한 분량의 논문집이라는 것. 이 논문집을 완성하는 데 무려 13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그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대체 왜 하버드 대학에서 ‘박정희 시대’를 눈여겨보는 것일까?

과연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어떤 리더십이 있었기에 남북전쟁 이후 기아에 허덕이던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갈 수 있는 막차를 타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박 전 대통령은 온전한 자유 시장경제주의자가 아니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뉴라이트’ 세력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정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
민간부문과 기업을 확장시켰지만 시장에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의 계획경제를 추진했다.

이에 대해 김병국 교수는 “1965년엔 정기예금 금리를 하룻밤 새 연 15%에서 연 30%로 올려 은행으로 돈을 끌어 모았지만 대출 이자율은 그보다 낮춰 투자 위축을 막았다. 역금리제다. 또 사채시장을 혼수상태에 몰아넣은 1972년의 8·3 사채 동결조치도 마찬가지다. 재정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채무를 완화시켰다. 그런데 그런 돈이 기업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었겠나. 대박 가능성이 높지 않았는데 대박 나게 만들었고, 그러기 위해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랐다. 박정희는 그런 길을 갔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평균 성장률 8.5%의 고도성장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상당한 운도 따랐다.

박 전 대통령이 수출에 힘을 기울이던 때, 케네디 라운드로 선진국의 관세 철폐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우리나라는 수출 진흥을 통한 산업화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규모가 중간 정도의 국가라면 60년대가 스스로의 힘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며 “한국의 산업화는 수요가 확대되면서 생산 쪽에선 기술이전이 가능한 시기에 일어났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향후 세계무역은 그런 방식의 산업화가 어렵도록 체제가 바뀌었다. 한국은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갈 수 있는 막차를 탔다”고 평가했다.

만일 당시 그 막차를 우리가 타지 못했다면, 우리의 산업화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놀라운 점은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는 ‘복지’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육영수연구원이 지난해 말 펴낸 'We Can Do, 박정희리더십'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3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수출과 1인당 국민소득도 크게 늘어나자 국내 최초로 의료보험(현재의 건강보험)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

실제 1977년 2월 1차로 저소득층 173만명에 대한 의료보험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생활능력이 없거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의료보장에 들어간 것이다.

그해 7월 1일부터는 전국의 486개 직장 의료보험조합이 설립돼 의료보험급여가 이뤄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은 1962년 정희섭 보사부장관에게 지시해서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에서 의료보험법을 만든 후 1963년 12월 이를 공포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안될 때 이미 의료보험제도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의료비 부담이 있는 사람들만 우선 가입토록 했으며,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는 경제성장을 확실히 한 다음에 도입키로 했고, 결국 지금 전국민 의료보험시대로 들어섰다.

이런 정책 역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었다.

이런 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경제 혁명가인 셈이다.

그 혁명적 경제정책이 지금 ‘세계의 리더십’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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