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毒杯를 마시는 심정으로...

관리자 / / 기사승인 : 2011-05-01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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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한나라당이 무척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4.2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패닉상태에 빠진 한나라당 내에서 이른바 ‘박근혜 역할론’이 제기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동안 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이계 주류 측에 위해 철저하게 왕따를 당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필요성이, 그것도 수도권 친이계로부터 불거져 나오는 것을 보면, ‘피식’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감추기 어렵다.
아마 이런 것을 두고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하는 모양이다.

사실 한나라당을 향한 ‘국민의 회초리’는 가혹할 만큼 매서웠다.

이번 4.27 재보선뿐만 아니라 앞서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실시된 각종 선거에서 국민들이 한나라당 후보들을 외면한 것은 ‘정신 차리라’는 채찍질이었다.

그런데도 여당은 지난해 연말 새해 예산안 날치기 사례에서 보았듯이 매 맞을 짓만 골라했다. 그래서 분노한 민심이 한나라당을 향해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만일 이번에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서 반 토막은커녕 반에 반 토막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 중 하나로 불거져 나온 것이 바로 ‘박근혜 역할론’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이야말로 ‘독배(毒杯)’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정에 따른 국민의 분노가 그 방향을 바꾸어 박 전 대표를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굳이 방패막이 역할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제 박 전 대표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태고 싶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 쪽으로의 급격한 힘 쏠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총대를 메고 나서려면 당 대표로 추대돼야 하는데, 그러자면 대통령 선거를 포기해야만 한다.

현재 당 지도부가 총사퇴함에 따라 6월이나 늦어도 7월 초에 전당대회를 열어야 하는데,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추대되면 현행 당헌당규 상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대선 출마자는 '선출당직과 대선주자 분리' 조항에 따라 대선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만 한다.

박 전 대표에게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당 대표가 되어 당을 살려달라는 요구는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그럼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주 간단하다.

당헌 당규를 개정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선출당직과 대선주자 분리' 조항은 박 전 대표가 대표 재임시절에 만든 것으로 매우 민주적인 조항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실상 이 조항은 ‘사문화’ 된지 오래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제 이 조항을 지키고, 당의 독립성을 인정한 일이 있는가?

없다. 당은 철저하게 이 대통령과 친이계의 통제아래 움직였고, 그러다보니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꼭두각시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당권 대권-분리 조항을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차기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몽준 전 대표가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고, 당 지도부 일원인 나경원 최고위원도 동의하고 있지 않는가.

정말 박 전 대표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이미 사문화된 규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나라당은 계륵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어쩌면 이미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한나라당과 생사를 같이하는 것보다 분당을 선택하는 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친박계 좌장 격인 홍사덕 의원이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 강요당했을 때 망설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분당(分黨) 가능성을 열어 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에 마지막 기회를 한 번 줄 필요가 있다.

즉 당 스스로 이미 사문화된 당헌당규를 개정하고, 박 전 대표를 당 대표로 추대해오면, 박 전 대표는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기꺼이 이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내년 총선에서 보수와 진보가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 올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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