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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게 바로 여론조사 결과를 일정비율 반영하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후보경선 여론조사제 폐지하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득표에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우선 단 1%의 오차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선거에서 최소한 5% 이상의 오차범위가 발생하는 여론조사를 표로 환산하는 것은 법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 허명회 교수도 “유권자 전수(全數)가 아닌 소수의 표본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통계적인 표본오차가 반드시 포함돼 있다”며 “오차를 무시하고 조사결과를 표로 환산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또 여론조사는 타당 지지자들로 하여금 ‘역선택’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즉 민주당 등 야당 지지자들은 야당에게 유리한 상대를 선택하기 위해 취약한 약점이 있는 여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 여론조사 응답자와 현장에서 투표한 사람들과의 ‘표의 등가성’이 문제다.
현장에서 투표한 사람들은 한나라당 대의원이거나 당원, 혹은 일반투표자라 할지라도 당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 반면,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현장에 직접 참여해 투표한 사람의 한 표보다 집에서 전화를 받아 응답한 사람의 한 표가 몇 배나 많은 표로 환산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따라서 여론조사를 폐지하고, 선거에 민심을 반영하고 싶다면 일반투표자의 비율을 늘리라는 조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필자의 이 같은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고, ‘이명박 대세론’에 휩쓸린 한나라당 지도부는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는 방식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박근혜 후보가 현장 투표에서 이명박 후보를 앞섰음에도 여론조사에서 뒤져 후보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지금 7.4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런 결과가 또 다시 재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 결과, 홍준표·나경원 후보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은 모두 4.27 재보궐선거의 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직 최고위원들이었다.
이들이 다시 지도부가 된다면 그야말로 ‘도로 한나라당’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현상을 가장 반길 사람들은 누구이겠는가.
아마도 민주당 등 야당의 지지자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론조사에서 그들의 응답은 불 보듯 빤하다.
어쩌면 야당 지지자들이 선택한 한나라당 대표가 탄생될지도 모른다.
실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려 21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의원들의 현장 투표에서 단 한 표를 얻지 못해도, 고작 3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 1등할 경우 당 대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30%나 반영되기 때문에 여론조사 3000표가 현장 투표자의 9만표에 맞먹는 황당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즉 한나라당에 관심을 갖고, 한나라당에 몸을 담고 애정을 보였던 대의원 1명의 표가 한나라당에 무관심한 여론조사 응답자의 30분의 1 밖에 반영이 안 된다는 말이다.
과연 이런 방식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지, 한나라당은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대선후보 경선 당시 한나라당 당원과 대의원 및 일반 국민들이 선택한 박근혜 후보가 여론조사 기관이 선택한 이명박 후보에게 밀렸던 것처럼 이번 7.4 전당대회에서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면, 한나라당의 운명은 어찌될까?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즉 그동안 당을 이끌어 왔던 전직 지도부가 다시 지도부가 되어 당을 이끄는 ‘도로 한나라당’이 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결코 야당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장 투표에 참여한 한나라당 당원들과 대의원들은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겠지만,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일반 국민들이야 이런 것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 아니겠는가.
하물며 야당 지지들이야 두말할 나위 없을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야당 지지자들이 선택한 여당 대표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30% 반영, 정말 웃기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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