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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투표용지에 어떤 문구를 넣을 것인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선택하게 되는 정책대안 문구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득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면 무상급식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물으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뭔가 이상하게 틀어졌다.
지난 2월 7일 주민투표심의회는 안건으로 상정된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심의했다. 그 청구대상은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실시’였으며, 투표를 거쳐 원안이 가결됐다.
따라서, 별도의 변경절차나 재심의가 없었다면, 주민투표는 당연히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실시’를 골자로 한 ‘찬반’ 형식을 띄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는 청구서에서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과,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올해), 중학교(내년)에서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 중 하나를 주민투표로 물어 결정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즉 전면 무상급식에 대해 ‘찬반’을 묻는 게 아니라, ‘소득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안과 ‘소득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2011), 중학교(2012)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안,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민투표법 제10조에 따른 청구인대표자 선정과 서명의 요청에 대해 주민투표청구심의회에서 가결된 주민투표 청구대상과 취지, 이유가 아무런 변경 절차나 별도의 심의 없이 임의로 변경되었기에 무효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좋다. 백번 양보해서 이런 하자를 눈감아 준다고 해도 문제는 또 있다.
현재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도 당장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서울시 교육청 역시 단계적인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지금 서울시내 초등학생들은 학년별로 단계적인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전면적 무상급식 실시’와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문구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당 역시, 학년별로 단계적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문구는 사실 왜곡이 분명하다.
차이가 있다면 민주당은 학년별로 단계적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청구인들은 소득별로 단계적 무상급식을 하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히려 청구인이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면적’이 아니라 ‘선별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사실적일 것이다.
즉 ‘전면적 무상급식이냐’, ‘선별적 무상급식이냐’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말이다.
그나저나 문구 하나를 놓고 이렇듯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주민투표를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무상급식에 대해 찬반을 묻는 게 아니라면, 그 어떤 투표도 무의미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소속 홍사덕 의원도 "오세훈 시장 주장대로 (단계적 무상급식을 하면) 연간 약 3000억원이 들고 민주당 시의원들이 하자는 대로 (전면 무상급식을) 하면 4000억원이 드니 1000억원 차이인데, 주민투표에 드는 비용은 200억원"이라며 "이렇게 가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고 질책하지 않았는가.
문구를 정하는 과정에서 서울시는 법적으로 보장된 관리자 권한을 십분 활용하려 할 것이고, 민주당은 공정성 문제 등을 내세워 자신에게 유리한 표현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서울시민들은 그 지루한 싸움을 앞으로 얼마나 지켜보고 인내해야 하는지 오세훈 시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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