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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지금 인터넷 상에서는 ‘100년만의 폭우’에 대한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각 언론은 지난 달 27일 서울시에 내린 폭우에 대해 ‘100년만의 폭우’라고 대서특필했지만,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서울시로부터 무상급식 반대 내용의 광고를 배정받았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세계일보 등은 1면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100년만의 폭우’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이 신문들은 지난 해 9월 폭우 때에도 ‘100년만의 폭우’라는 기사를 내보냈었다.
서울시 역시 '27일 시간당 최고 113㎜의 폭우가 내렸다'며 이는 '100년만의 폭우'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코웃음을 친다.
100여년 동안 서울의 시간당 강수 기록을 살펴보면 1937년 146㎜, 1942년 118.6㎜, 1964년 116㎜의 폭우가 쏟아진 바 있다.
반면 지난 27일 서울시에 내린 시간당 강수량은 113㎜였다.
또한 하루 동안으로 계산해 봤을 때도 27일 서울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301.5mm지만 1920년 8월 2일에는 354.7mm 1998년 8월 8일 332.8mm로 더 많은 양의 비가 내렸었다.
시간당 강수량은 물론, 일일 강수량을 따져보았을 때도 결코 100년만의 폭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서울시는 ‘100년만’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행정부처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100년만의 폭우’라는 서울시와 각 언론의 표현은 ‘굉장히 드물게 발생하는 기상이변’으로 ‘어쩔 수 없는 사건’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즉 ‘인재(人災)’가 아니라 천재(天災)’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매년 되풀이 되는 사건이라면, 그것은 천재가 아니라 인재다.
하지만 100년만에 발생한 사건이라면 그것은 천재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그런 점을 노린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만일 지난해 추석 물난리 때 각 언론이 ‘100년만의 폭우’라며 ‘불가피한 천재’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았더라면 오세훈 시장은 수방대책에 더욱 힘을 쏟았을 것이고, 이번과 같은 불행한 산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100년만의 폭우’를 강조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
산사태로 시뻘건 진흙더미가 쏟아져 내려와 집과 사람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아스팔트 도로들은 수압을 견디다 못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길은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이게 강인지 길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동차들이 차오른 물 때문에 길가를 둥둥 떠다니다가 지붕 끝에 걸리는가하면, 도로 곳곳이 마비되기도 했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고, 먼 지방 소도시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심장부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도 오 시장은 ‘100년만 폭우’라는 보도자료 한 장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안이하게 대처했다가는 더욱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여름비가 내리는 양상은 과거와 뚜렷하게 달라졌다. 7월 장마전선이 소멸된 뒤로도 국지성 호우는 수시로 내린다. 실제 작년 8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6~7월 평균 강수량보다 많았다고 한다.
서울시의 보도자료처럼 ‘100년만의 폭우’가 앞으로도 종종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 시장은 그때마다 ‘100년만의 폭우’라고 하면서 책임을 모면하려 할 것인가?
그것은 곤란하다. 이제는 땜질식 마구잡이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수방대책을 내어 놓을 때가 됐다.
언론 또한 ‘100년만의 폭우’라면서 오 시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기보다는 오 시장이 서울 수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수방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따끔하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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