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 결과, 착잡하다

진용준 / / 기사승인 : 2011-08-25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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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지난 24일 실시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결국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투표율이 개표기준인 33.3%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필자도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이번 투표율은 25%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주민투표를 중단해 달라는 요청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투표율은 25.7%로 나타났다.
어느 독자의 말처럼 필자가 도통해서 25%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조금만 면밀히 살펴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수치였다.
그런데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민투표와 시장직을 연계하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결국 오 시장은 조만간 시장직을 사퇴해야만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지나친 자만이 화를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오 시장에게 ‘바람’이 들게 만든 일부 보수언론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25일 보수언론이 오 시장을 영국 전 대처 수상에 비유하는 등 노골적으로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 점을 지적했다.
실제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예상 투표율을 무려 35%로 높게 잡는 등 ‘바람잡이’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결과가 바로 ‘25.7%’라는 수치다.
이런 주민투표 결과를 바라보는 필자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아전인수 격으로 자신들의 승리라고 해석하는 모양을 보니 더욱 그렇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사실상의 승리’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벌써부터 서울시장 보궐선거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천정배 최고위원의 경우 이날 공식적으로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이는 결코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 물론 한나라당 승리는 더더욱 아니다.
민심은 단지,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 ‘레드카드’를 던졌을 뿐이다.
우선 오 시장은 무상급식 문제를 김문수 경기도지사처럼 정치력을 발휘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해 서울시민을 극단적인 갈등으로 몰아넣은 책임이 있다.
이에 대해 따끔하게 회초리를 든 것이다.
특히 서울시민들이 뽑아 준 시장직을 함부로 도박판에 판돈 걸듯이 내던져 버린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는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왜 너희가 함부로 탄핵하느냐’며 지난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여야 모두 겸손할 필요가 있다.
만일 한나라당이 ‘사실상 승리’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면 깊이 반성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나라당은 철저하게 패배했다. 단순히 서울시의 지역 문제로 치부해도 될 일을 중앙당이 괜스레 끼어들어 판을 키워 놓았고, 그게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패배’로 이어지게 만든 요인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반성하고 중앙당 지원을 적극 요청한 당 대표와 나경원 최고위원은 스스로 그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승리 또한 아니다.
만일 민주당이 주민투표 결과에 나타난 민심을 곡해해 ‘민주당 승리’로 인식하고, 자만에 빠진다면 민주당 역시 국민의 회초리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모쪼록 여야 모두 이번 주민투표를 계기로 국민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아무리 그 유혹이 달콤하더라도 국민 갈등을 유발하는 정치적 행위는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야가 모두 분명하게 인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특히 각 언론은 정치인의 잘못된 선택을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객관적이고도 신중한 보도를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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