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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여권 핵심관계자들이 지난 30일 여의도 63빌딩에서 만찬회동을 가졌다는 소리가 들린다.
당시 모임의 참석자들은 측근들에게조차 일정을 알리지 않는 등 철저한 보안 속에 회동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인원이 자그마치 30여명에 달한다는 것.
대체 이 괴상한 모임은 누가 주선 한 것이고, 모임의 의도는 무엇일까.
31일 인터넷 신문 <이투데이>에 따르면, 이 자리는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주선해 만들졌으며, 주로 퇴임한 오세훈 시장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오 시장을 위로하기 위한 모임이라면 굳이 ‘007작전’을 수행하듯이 측근들에게조차 회동 사실을 비밀로 할 까닭이 없지 않는가.
따라서 극비회동 사실이 언론에 알지면서 사실상 공개 모임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당초 목적을 숨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더구나 당시 모임을 주선한 임 실장은 물론 청와대 관계자들이 단 한 사람도 회동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 임 실장이 참석자들에 양해를 구한 점도 매끄럽지 않다.
그래서 청와대가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여당에 입김을 행사하기 위해 이들이 모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그 ‘시나리오’라는 게 어떤 것일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박근혜 전 대표를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그것도 대통령 실장의 주선 아래 오 전 시장과 정몽준 전 대표 등 범친이계가 주축이 되어 별도로 모인 것을 보면, 이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차기 대통령 선거에 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개입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사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이 대통령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직간접적으로 힘을 실어 준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무상급식은 이미 실시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있고 그렇듯이 각 지자체 형편과 상황에 따라 하면 되는 사안"이라며 선을 긋고 한발 물러나 있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 출석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 시장을 향해 "너무 과도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시장직을 걸 일은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주민투표는 주민들이 결정하면 되는 문제였지, 정치권이 나서서 할 일은 아니었다”고 거듭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10월 재보선 지원 여부를 묻는 질문에 "뭐든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당의 입장 정리, 당론 정리, 이런 것이 뭐를 주장하는 것인지 국민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박 전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오세훈 전 시장 등 친이계의 ‘복지 망국론’과 같은 생각을 지닌 인사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경우,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모임을 주선하고, ‘복지 망국론’에 동조하는 오세훈 전 시장과 정몽준 전 대표 등이 별도의 모임을 가진 것은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즉 주민투표 과정에서 ‘복지 망국론’에 적극 동의한 나경원 의원 등 친이계 인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만들고, 오 전 시장과 정 전 대표 등이 지원하면 박 전 대표의 지원 없이도 승리할 수 있겠느냐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을 것이란 뜻이다.
그렇게 해서 친이계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사분오열된 친이계가 다시 결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박근혜 대항마’를 만드는 일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서라.
만일 청와대가 이 같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한나라당은 결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길 수 없다. 나아가 내년 총선에서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30%대로 추락한지 이미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나서면 나설수록 한나라당에게는 손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어떤 시나리오 아래 비밀회동을 추진한 것이라면, 청와대는 시나리오를 즉각 용도폐기해 주기 바란다.
부탁하거니와 청와대는 이제 남은 대통령 임기동안 국정이나 잘 챙기고, 제발 정당 일에는 나서지 말라.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그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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