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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선거판에 끌어들이기 위한 일부 보수언론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중앙일보>는 최근 “박근혜, 선거 전면에 나서서 돕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에 대문짝만하게 올렸다.
그러자 다른 보수언론들도 연이어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올리며, 박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선거지원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신문 <프런티어타임즈>에서는 “박근혜와 나경원이 손을 잡으면 비단길이 펼쳐지고 돌아서면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노골적인 협박성 칼럼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기사들을 모두 ‘오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거기에 자신들의 ‘희망사항’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선거지원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고, 아직은 어떤 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박 전 대표는 이미 결정했다.
각종 선거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원칙은 분명하다. 그것은 ‘선거는 당 지도부가 중심이 되어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당 지도부라는 건 일반적으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당 대표가 공천을 주도하고, 대표는 자신이 공천한 사람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당 대표로서 앞장서서 선거를 지휘했고, 이후 야당 대표로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의 각종 선거에서 40대 0이라는 불패신화를 만들어 낸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박 전 대표는 당내 유력 대권주자이기는 하나, 아무런 당직을 맡고 있지 않는 평의원일 뿐이다.
따라서 선거지원여부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대답은 달라질 게 없다.
즉 ‘선거는 당 지도부가 해야 된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 때문에 나설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당내 일각에서는 당 대표나 최고위원이 아니더라도 선거 국면에 이르면 임시적으로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선대위원장은 선거와 관련한 당의 임시지도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박 전 대표에게 선대위원장을 맡겨서라도 억지로 그를 선거판에 끌어들이자는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박 전 대표를 사실상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일 박 전 대표가 나경원 후보의 손을 잡고,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시민들과 악수하면서 “나 후보를 찍어주세요” 라고 권유한다고 생각해 보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법정선거기간 내내 그렇게 돌아다니는 모습은 박 전 대표를 아끼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 전 대표와 나경원 후보는 정책방향이나, 지향점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략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떤 면에서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있어서 보물과 같은 존재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데도 정당 지지율을 보면, 한나라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그래도 조금은 앞서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그나마 한나라당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직접 뛰어들고, 그 선거에서 패할 경우에 어떻게 되겠는가.
박근혜 대세론은 뿌리 채 흔들릴 것이고, 덩달아 한나라당 지지율도 민주당에 뒤지고 말 것이다.
정말 ‘좋은 상품’, 그래서 유권자들에게 권할만한 ‘상품’을 가지고 하는 승산 있는 선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선거라면 굳이 박 전대표가 나서서 희생양이 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박 전 대표가 나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또 그럴 이유도 없다.
나 후보가 박 전 대표를 만나 지원요청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그렇다고 흔들릴 그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 바뀐다면, 그게 어디 원칙이겠는가.
이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를 선거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를 압박하는 비열한 행위를 중단하기 바란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오히려 ‘서울시장 공천 포기’를 선언하지 못한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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