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견제구’ 날린 MB

전용혁 기자 / / 기사승인 : 2011-12-18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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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이명박은 임기 내내 ‘박근혜 견제구’를 날렸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디시인사이드에서 한 누리꾼은 이렇게 의문을 표시했다.

“박근혜를 화끈하게 밀어주면 한나라당 정권재창출에도 도움이 될듯한데, 왜 이명박은 박근혜를 견제하고 정운찬이나 김태호같은 대항마를 키워서 박근혜의 대선행보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는 걸까?”

사실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많은 빚을 진 사람이다.

2007년 8월 20일.

무려 1년 2개월을 경주한 제17대 대통령 한나라당 후보경선이 결국 이명박 후보의 신승(1.5% 차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당시 당원과 대의원, 일반 국민들이 대거 참여한 현장 투표에서는 박근혜가 승리했다. 이명박은 겨우 여론조사에서만 조금 앞섰을 뿐이다.

그래서 정말 이명박 이긴 것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깨끗한 승복”을 선언했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오늘부터 전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서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 저를 지지해 주셨던 모든 분들은 경선 과정의 모든 일을 잊고 당의 화합과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아름다운 승복’, ‘아름다운 패자의 승리’라고 불렀다.

박근혜의 ‘깨긋한 승복’으로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문화의 창출을 기대하게 되었고, 이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 됐다.

그런데도 이명박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박근혜를 끌어안기 보다는 그를 견제하는 데에 상당한 힘을 쏟았다.

우선 대통령 취임 직후 실시된 2008년 4.9총선 당시 이른바 ‘목요일밤의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요일밤의 대학살’로 공천탈락된 25명 대신 공천한 인물 가운데 무려 20명이 친이계로 분류된 반면, 친박계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친박계는 "'공천개혁'으로 포장된 친박계 대학살"이라고 비난했다.

박근혜도 이 같은 공천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번 공천은 분명히 잘못된 공천입니다. 사적 감정을 갖고 표적 공천을 한 것입니다”

전날 공천 결과를 보고받은 뒤 "어떻게 된 일이냐", "알았다"고 말한 뒤 침묵을 지켜온 그가 하룻밤 숙고 끝에 이번 공천의 성격을 자신에 대한 `보복 공천으로 명실상부하게 적시한 셈이다.

결국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계는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으로 출마해 18대 총선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상당한 의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박근혜 견제구’ 가운데 가장 파문이 컸던 것은 정치권 영입 0순위로 손꼽혔던 정운찬을 총리로 기용하는 이른바 ‘정운찬 카드’였다.
하지만 그 카드 역시 10개월만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정운찬은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권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대항마로 내세우는 방안을 검토했던 인물이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서울대 총장, 경제전문가 등 이력을 갖고 있어 정치 상품성이 충분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명박 2009년 9월3일,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 정운찬을 총리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자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를 견제하기위해 정운찬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사실 정운찬의 정치적 야망은 클 수밖에 없었다.
총리를 지낸 인물이 정치적으로 꿈꿀 수 있는 다음 자리는 대통령 자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운찬은 'MB 예스맨'으로 전락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자신의 정치적인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채 "731부대는 항일독립군" 발언 등 각종 구설수에 오르면서 이미지가 추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박근혜를 견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세종시 원안 폐기를 주도하다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2010년 7월 29일 오후 3시.

정운찬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사퇴의 변'을 밝히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고, 별도의 질문은 받지 않은 채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쓸쓸하게 퇴장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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