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의장 사퇴가 끝은 아니다

이나래 / / 기사승인 : 2012-02-09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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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돼 온 박희태 국회의장이 결국 9일 의장직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이날 박 의장은 한종태 국회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 발표문을 통해 “국민께 죄송하다”며,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비리관련 사건과 연루돼 현직 의장이 불명예 퇴진한 것은 박 의장이 처음이다.
앞서 박 의장은 지난 2008년 7월 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돌린 의혹이 뒤늦게 불거지며, 거센 사퇴 압박을 받아왔으나, 의장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버텨 왔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칼날이 좁혀오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을 냈을 것이다.
특히 전직 비서인 고명진씨의 검찰 진술이 결정타가 됐을 것이다.
고씨가 고승덕 의원 측에 건네진 문제의 돈봉투를 돌려받은 뒤 이를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전 정무수
석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은 당시 고씨가 김효재 상황실장에게 ‘고승덕 의원실에서 300만원 돈봉투를 돌려받았다’고 보고하자
‘그걸 되돌려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심지어 검찰은 고씨로부터 “검찰 조사시 ‘사실을 밝히지 말고 거짓말을 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다.
앞서 고씨는 3차례의 검찰 조사에서는 “고 의원측으로부터 돈봉투를 돌려받긴 했지만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며 윗선 보고사실을 부인해 왔었다.
김 수석비서관 역시 돈봉투 사건 초기에 “고 의원을 전혀 모른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고씨는 이날 언론에 공개 양심선언을 하고 말았다. 고씨는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
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르면 다음주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소환 조사하는 한편, 박 전 의장도 조속한
시일 내에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박 의장의 의장직 사퇴가 곧 사건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박 의장은 이제라도 스스로 검찰에 나가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물론 국회의원직도 당연
히 내놔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장직의 위상과 명예를 추락시킨 사람이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국민정서와도 배치되는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박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당 대표 경선에 나섰다는 점에서 돈봉투의 출구조사와 함께 입구조사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실제 국민들 사이에서는 박 의장이 뿌려댄 돈 봉투가 이명박 캠프의 경선자금 중 일부일 것이라는 의구심이 팽
배해 있는 상태다.
사실 박희태 의장은 MB정권 최고 실세그룹인 이른바 ‘6인 회의’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다.
6인회의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이재오, 박희태, 김덕룡 등이 발족한 모임으로 MB 캠프의 최
고사령탑이자 일등 개국공신 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대통령 당선 뒤 이들 5명의 실세들은 국정과 인사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들 가운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측근 비리로 불명예 퇴진했고, 이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 역시 측근 비리로 곤욕을 치르면서 19대 총선 불출마를 밝혀야 했다.
'왕의 남자' 이재오 의원과 김덕룡 의원은 이제 그 존재감마저 찾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 박 의장마저 돈봉투 파문으로 인해 끝내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대단히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닐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들에게 있어서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보다 더 불행한 사태, 최악의 경우 이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게 되는 한이 있더라
도, 이번 ‘돈 봉투’ 파문의 진실, 즉 출구조사와 함께 입구조사까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거듭 말하지만 박 의장의 사퇴가 모든 것을 종결하는 의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비록 수사의 칼날이 권력의 심장부를 향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실체적 진실만큼은 반드시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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