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민주당의 잘못된 만남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2-07-22 12: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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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달랑’ 책 한권 내는 것으로 사실상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일단 겉으로는 "야권의 영역이 넓어졌다"며 환영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오히려 민주당 속은 안철수 원장으로 인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안 원장이 책에서 "(민주당) 집권 10년간 서민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다"며 민주당의 무능함을 강하게 질책했기 때문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안철수의 등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사실상 ‘마이너리그’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점이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주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당 밖의 안철수 원장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가 없다. 그러다보니 민주당 경선은 ‘도토리들의 향연’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 일쑤다.

안철수 원장을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전략이 오히려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입지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원장의 지지율이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통해 사실상 출마선언을 했는데, 그런 방식의 출마선언이 오히려 안 원장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회사인 리얼미터가 중앙일보와 함께 안 원장의 책 출간 이후인 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 원장은 다자 대결에서 15.9%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전날에 비해 2.2%포인트 내려간 수준이다.

반면 1위인 박근혜 후보는 39.4%로 전일 대비 각각 2.5%포인트 상승했다.

박 전 위원장 지지율의 절반 수준도 안 되는 안 원장이 유력한 ‘박근혜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으니,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 민주당 유력 주자들의 입지가 초라해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마디로 안철수 원장이 민주당을 사지(死地)로 몰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안 원장은 민주당의 대체재 성격이 강하다.

먼저 그의 정책은 민주당과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의 정책 대부분이 중도층을 겨냥하고 있듯이 민주당 정책 역시 중도 표심을 공략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민주당 유력주자로 안철수 원장과 야권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의 정책은 어느 한 쪽이 베끼기라도 한 듯이 너무나 닮았다.

우선 재벌 지배구조 문제를 보자.

안 원장과 문고문 보두 금산분리 강화, 순환출자 해소를 주장하고 있다.

보육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목소리로 ‘무상보육’과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초·중등학생 무상급식 실시 역시 두 후보 모두 찬성이다. 반면 의료민영화에 대해선 안원장과 문 고문 모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도 두 후보 모두 “폐기보다 적극적인 재재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의 지지층이 서로 겹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안철수 원장이 없었다면, 즉 민주당이 안철수 원장에게 줄곧 ‘러브콜’을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문 고문은 안 원장의 지지표를 상당수 흡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해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에 버금가는 지지율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민주당 독자후보로도 충분히 박 전 위원장과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체급을 갖추었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독자 세력으로는 도저히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는 패배감 때문에 안철수 원장에게 매달렸고, 결국 민주당 대선주자들을 모두 ‘도토리 주자’들로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 “5년을 더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끼리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흘러 나왔지만, ‘박근혜 대세론’에 겁을 먹은 민주당은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지 않았다.

결국 안철수와 민주당의 잘못된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민주당은 지금 독자적으로는 도저히 정권교체를 꿈꿀 수 없는 ‘허약한 정당’이 되고 만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안 원장이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 집권 10년간 서민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다"며 민주당의 무능함을 강하게 질책하고 있는 데도 ‘찍’소리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렇게 한심한 야당을 믿고 기꺼이 표를 던져 줄 국민이 얼마나 될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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