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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가운데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수행 중에 성추행 의혹으로 지난 9일 귀국한 뒤 잠적했던 윤창중 전 대변인이 사흘만에 공개석상에 나와 입을 열었으나,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귀국과정을 놓고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진실공방전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중식당 하림각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도운 현지 여성인턴과 술자리에서 성추행이 있었고 새벽에 호텔방으로 불러냈다는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성추행 의혹에 대한 전면 부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방미 수행단에 대한 소명과정에서도 전해졌듯이 이미 예상됐던 바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을 받은 발언은 그의 귀국 사유가 이남기 홍보수석의 종용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윤 전 대변인 본인이 귀국을 결정했다는 전날 청와대의 설명과 전면 배치되는 것으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 전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경제인 조찬 행사를 마치고 이 수석을 영빈관에서 만났더니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서 이남기 수석에게 '제가 잘못이 없는데 왜 일정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냐. 그럴 수 없다. 해명을 해도 이 자리에서 하겠다'라고 말씀드렸다"며 "잠시 후 이 수석이 제게 '한시 반 비행기를 예약해놨으니 핸드캐리 짐을 찾아서 내가 머물고 있는 윌러드 호텔에서 가방을 받아서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수석은 제게 직책상으로 상관이라 저는 지시를 받고 달라스 공항에 도착해 제 카드로 비행기 좌석표를 사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던 것"이라며 "인천공항에 도착 후 숙소로 향하던 중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전화가 와 조사를 받아야 겠다고 해서 지금 말씀드린 내용 전체를 진술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전날 청와대의 설명과 완전히 상반된 진술이다.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이 '자의'로 귀국했다고 주장한 반면 윤 전 대변인은 이 수석의 종용에 의한 '타의'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주장한 셈이다.
그러자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일부 언론에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장에서 귀국 권유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내가 (한국에) 보냈냐, 안 보냈냐는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홍보수석과 윤 전 대변인의 진실공방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번 사건의 본질은 윤 전 대변인이 성추행을 했느냐, 안했느냐의 여부다.
하지만 이 홍보수석이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종용했느냐의 여부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만일 윤 전 대변인의 주장이 맞다면 그것은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오점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적인 은폐시도를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정황이나 사건들에 미루어 볼 때 아직은 윤 전 대변인이 책임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 홍보수석이 귀국을 종용한 게 사실이라면,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오점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적인 은폐시도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여부 사실파악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 홍보수석은 최소한 지휘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박 대통령의 방미성과마저 평가절하 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번 방미의 최대성과는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6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을 진일보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성과로 꼽힌다. 한미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물론 동맹을 계속강화해 나가겠다는 내용이 선언문에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북한 리스크'를 상당부분 불식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성과 가운데 하나다.
이런 성과들이 ‘윤창중 추문’으로 인해 폄하된다면,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우리 스스로 차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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