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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한국일보가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점령당했다는 황당한 소식이다.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와 한국일보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장재구 회장 등 사측은 지난 15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용역 15명을 대동한 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한국일보 편집국으로 몰려와 편집국을 점거, 폐쇄했다는 것.
일찍이 언론사가 용역업체에 점령당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편집국에는 아주 주요한 정보들이 모여 있으며, 기자들은 그 정보를 생명처럼 여긴다. 그런데 그런 정보들의 집합소인 편집국에 기자들이 아닌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기자들을 내쫓았다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번 사태는 사실 장재구 회장의 편집국 부당인사문제가 원인이었다.
노조 비대위에 따르면, 장 회장은 회사 간부 15명과 용역업체 직원 15명 등 30여명과 함께 15일 오후 6시20분께 한국일보가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한진빌딩 15층의 편집국으로 들이 닥쳤다.
그리고는 편집국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기자들에게 ‘근로제공 확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근로제공확약서는 “본인은 회사의 사규를 준수하고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직무대행 포함) 및 부서장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 것임을 확약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퇴거 요구 등 회사의 지시에 즉시 따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기자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확약서에 서명할리 만무했고, 모두가 서명을 거부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자 용역직원들이 기자들을 힘으로 밀어냈고, 결국 기자들은 편집국 밖으로 내쫓겨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사측과 용역직원들은 편집국 출입문을 봉쇄하는 한편, 다른 회사들도 함께 쓰는 공용공간인 15층 비상계단과 연결통로까지 모두 폐쇄하고 말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면 제작을 위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전산시스템인 기자집배신까지 모두 폐쇄해버렸다는 사실이다.
또 기자들이 기사집배신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삭제해 버려, 현재 기자들이 기사집배신에 아이디를 입력하면 “OOO은 퇴사한 사람입니다, 로그인 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고, 접속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사집배신을 차단한다는 것은 기자로서의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16일 신문제작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고, 어쩌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사태를 지켜보는 필자의 마음은 같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하기 그지없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한국일보 사측은 16일 "편집국 폐쇄가 아닌 정상화 조치"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박진열 한국일보 사장은 이날 오전 '한국일보 편집국 정상화를 위한 적법하고 불가피한 조치 취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회사의 인사 조치에 불만을 품은 일부 간부와 노조 집행부에게 현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사장은 "한국일보 노조의 유일한 목적은 자금 동원력이 없는 회장은 물러나라는 것"이라며 "추가로 돈을 못 내는 오너이니 다 놓고 나가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폐쇄니 봉쇄니 하며 주장하고 있는 16일에도 편집국 많은 부장들과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사측의 주장대로 이날 오후 2시 현재 임시로 편집국장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하종오 전 사회부장을 포함해 차장급 이상 7명과 정기자 5명 등 10여명이 신문 제작에 참여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작 10여명의 참여로 제대로 된 신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더구나 이날 오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전원이 사설을 집필하지 않기로 하고 외부에 사측의 부당한 직장폐쇄를 알리기로 한 마당 아닌가.
따라서 사측의 ‘정상화 조치’라는 해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모쪼록 한국일보 경영진은 이제라도 현명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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