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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검찰의 원전비리 수사가 한국수력원자력의 고위층으로까지 확대될 전망인 가운데, ‘원전 안전’ 문제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수사단은 19일 한수원이 검증업체인 새한티이피와 납품업체 JS전선의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및 통과에 조직적으로 공모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전날 한수원 송모 전 부장과 황모 과장을 체포하고, 이틀째 정확한 공모경위와 금품수수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강도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빠른 시일내에 송 전 부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한수원 고위층 1, 2명을 추가로 소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검찰은 원전사고 때 안전설비에 동작신호를 전달하는 핵심부품인 제어케이블의 성적서를 위조하고 설치까지 한 것은 한수원 실무자선에서 결정하기 어려워 윗선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저렴한 에너지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에너지인 원전의 안전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전 폭발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2년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냉각기능 상실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따라서 원전의 제어용 케이블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되는지가 확인돼야 사용가능하다.
그런데 JS전선의 제어케이블은 지난 2001년과 2004년 그리고 2006년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친 시험에서 매번 불합격했다.
결국 시험샘플 12개 가운데 3개 밖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시험성적서 위조를 통해 합격처리된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검찰 수사결과 합격샘플 3개 가운데 2개 마저도 가짜인 사실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실제 외국 검증업체에 시험을 재의뢰하는 과정에서 방사능처리도 하지 않은 이른바 생케이블로 샘플을 바꿔치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산업부가 원전의 품질관리를 감시할 수 있는 제3기관을 신설해 원전분야 품질서류에 대해 원칙적으로 전량 검증을 확인키로 했지만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다.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장협의회가 이날 오후 부산시의회에서 제8회 정기회를 열고 '원전안전 종합채택 수립 촉구 결의안'을 채택, 정부에 건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협의회는 "원전 사고가 터질때마다 대책이 임기응변식으로 나와 원전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며 "정부는 원전 관련 부정과 비리가 근절될 수 있도록 견고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새누리당 제4정책조정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같은 날 당정회의를 열고 원전비리와 관련된 공기업 퇴직자의 협력업체 재취업을 제한하는 내용을 법조문에 명시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공직자윤리법에는 이와 같은 규정이 명시돼 있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전력기술 등 공기업 퇴직자와 관련된 규정은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원전 비리 관련자에 대해 형사상 엄벌은 물론, 파면·해임 등 신분상 문책도 철저히 하기로 했다. 나아가 고의적인 과실이 있는 개인 및 법인·기관에 대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뿐만 아니라 재산 가압류까지 병행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모두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핵보다 무서운 게 우리 원전”이라거나 “당장 비용이 덜 든다고 뇌관이 풀린 핵폭탄을 옆에 끼고 살 순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전사고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내려면 박근혜정부는 지금까지 있었던 땜질 식 처방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지금은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전국의 원전 시설은 물론이고 한수원과 한전기술 등 유관 기관·기업에 대한 상시적인 정밀감사 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원전비리는 되풀이될 것이다.
원전사고의 약 18%가량이 인재라고 한다. 그런데 불량부품에 인재가 겹치면 대형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그만큼 더 높아질 것이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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