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선거 공천폐지, 신중함이 옳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3-07-09 15: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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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정치권이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당 책임정치의 본질이 훼손당할지도 모르는 매우 중대한 문제를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여야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웠다고 해서 그를 무비판적으로 시행하려들거나 여야 당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잘못된 일일 것이다.


사실 민주당은 당내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가 지난 4일 정당공천 폐지 결론을 내리자, 바로 다음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8일 긴급 의원총회까지 열었다.


그토록 중차대한 일을 아무런 고민 없이 마치 번갯불에 콩 볶듯 일사천리로 진행하려한 민주당 지도부의 행태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 의총에서 당장 반대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결국 민주당은 이를 재논의하자는 입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전날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선 의원 23명이 발언했고 이 가운데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결론에 반대한 의원은 과반인 12명이었다. 폐지에 찬성한 의원은 8명, 중립 취지 발언을 한 의원은 3명이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공천폐지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물론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재논의키로 했으나, 그날 회의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나 현행 유지 가운데 어느 한쪽의 입장으로 정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공천폐지 여부에 대해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릴 것인지 정도를 결정하는 수준에서 회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즉 전당원투표를 통해 당원의 의견을 물어 폐지 여부를 결정한다거나, 아니면 시도당별로 공청회를 추가로 개최해서 당원들의 의견수렴과정을 거친다는 식의 전반적인 절차가 논의 될 것이란 뜻이다.


그 과정에서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의 제안은 사실상 백지화 되고, 결국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물론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이날 당 정치쇄신특위가 마련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 쇄신방안에 대해 “무공천은 당의 공약 사항이기 때문에 변동이 없다”고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여론과 당내 의견을 종합적으로 청취하고 전문가 분석을 거친 뒤 9월 국회에서 야당과의 합의를 거쳐 입법화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과 합의’라는 전제조건을 단 것이다.


이는 민주당과 협의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정당공천 폐지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여야 모두 표면적으로는 공천폐지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무런 대안 없이 시간에 쫓기 듯 성급하게 결정하는 게 문제이지, 시간을 두고 연구, 검토하면서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은 결코 나무랄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공천폐지 문제에 대해 신중론으로 돌아선 여야 지도부의 판단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다시 말하지만, 공천을 폐지했을 경우에 정당이 작동시켜 온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 절차와 장치를 철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폐해가 더 심각해 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공천폐지 결정은 여성과 장애인은 물론 정치신인들의 지방선거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자금과 조직 면에서 우세한 지방토호세력들이 득세하거나 현역 정치인이 기득권을 활용해 온존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천폐지를 결정하려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세부적인 대안을 마련 한 후에 실시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특히 당의 주인은 당 지도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당원들이기 때문에 공천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하려면 반드시 당원들의 의견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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