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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문재인 의원이 23일 오후 ‘박 대통령의 결단을 엄중히 촉구합니다’라는 장황한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문 의원은 이날 성명에서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며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승리해 수혜자가 될 수 있었고, 반대로 자신은 패배해 피해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사실상 대선 불복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바른 말을 잘해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이 붙은 조순형 전 의원도 이날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문 의원의 발언은 공식적인 대선 불복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문 의원은 ‘대선불복’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국정원 대선개입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국민과 야당의 당연한 목소리까지 대선불복이라며 윽박지르고 있다"며 "결코 과거 일이 아니다. 미래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이 같은 발언이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의 말처럼 만일 ‘불공정한 선거로 박 대통령이 수혜자’, 즉 당선됐다면 그 선거는 당연히 무효다. 따라서 문 의원의 발언은 대선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 의원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이라며 마치 ‘대선불복’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교묘한 말장난일 뿐이다.
오히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마치 대단히 불공정한 선거가 진행된 것처럼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
실제 그는 “최근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권력기관들의 대선개입과 관권선거 양상은 실로 놀랍다”며 “군사독재 시절 이후 찾아보기 어려웠던 군의 선거개입은 경악스럽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그는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이라며 광범위한 조직적 대선 개입이 있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이나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 의혹은 아직 구체적으로 규명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의혹일 뿐이다.
더구나 많은 부분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마당이다.
실제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진두지휘했던 운석열 팀의 수사가 심각한 ‘부실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23일 “윤석렬 팀이 제출한 ‘공소장 변경 허가신청서’에서 국정원 직원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고 알려진 트윗 내용 중 대다수는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복사해서 붙인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0일 5만5689건을 자체 분석해 270건을 공개하며 이 중 심리전단 직원들이 직접 쓴 글은 113건이고, 157건은 타인이 올린 글을 리트윗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밝힌 심리전단 직원들이 직접 썼다는 113건의 글 중 대다수인 76건은 이미 다른 네티즌이 써놓은 글을 복사해서 옮긴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의혹 역시 그런 식으로 상당히 부풀려져 있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명박 정권이, 그것도 친이 핵심 인사들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문재인 의원의 주장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국민들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철전지 원수처럼 여겼던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위해 국정원을 동원했다는 문 의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리틀 이명박’이라고 불렸던 친이계 핵심 중의 핵심인사인데, 그가 수장으로 있는 국정원이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선거에 개입했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노릇 아닌가.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던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판단할 때, 이명박 정권의 그 어느 기관도 박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사실이 없다. 국정원이나 국방부 사이버사령부가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국정원 직원이나 국방부 직원 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가 개인적으로 댓글을 올렸을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마치 조직 전체가 불법선거운동이라도 한 듯 떠벌리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사초실종’ 문제로 궁지에 몰렸던 문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민주당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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