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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현장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가족들이 많다.
이들 가운데 실종자나 사망자들로부터 걸려온 마지막 전화를 놓쳐 가슴을 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 교사 박육근 씨의 아내는 지난 16일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 모르는 남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박 씨가 사고 당시 전화가 없어서 옆에 있는 학생의 휴대전화를 빌려 전화했는데, 그의 아내는 그 시간에 수업 중이었기 때문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니까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의 아내는 그게 한(恨)으로 남을까 두렵다.
아들의 전화를 받지 못한 김모씨의 사연도 가슴이 아프다.
평소 전화를 자주 안 하던 아들은 배에 탑승한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내가 전화소리를 못 들었고, 뒤늦게 아들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지만 이미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씨는 “그때 전화만 받았어도, 내 자식이 위험하다는 걸 미리 알았을 텐데… 난 내 자식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며 오열을 했다.
구명조끼의 끈을 서로 묶은 채로 함께 떠난 두 아이의 사연도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실제 지난 22일,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남녀 고교생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이들은 발견 당시 뒤집힌 세월호 우현 통로 계단을 올려다보는 형태로 잠겨 있었다. 위, 아래로 각각 1개씩 달린 구명조끼 끈 가운데 위쪽 끈은 각자 허리에 묶었지만 아래쪽 끈은 서로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발견한 잠수부는 “그 순간 일생에서 가장 놀랍고, 가슴 뭉클한 순간을 물속에서 맞이했다”며 “웬일인지 남학생 시신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시신은 물속에서 떠오르게 마련인데, ‘이 아이들이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젠 부디 그 두 학생이 다른 세상에서 평안하게 지내기를 바랄뿐이다.
세월호 탑승자 중에는 결혼 30주년 동반여행에 나섰다가 남편만 구조되고 아내는 실종된 안타까운 부부 사연도 있다. 사고 당시 남편 정모씨는 배가 기울자 구명조끼를 입고 라운지로 나오려던 아내에게 객실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라.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는 안내방송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은 순식간에 차올랐고 정씨는 가까스로 헤엄쳐 나왔지만 객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실종되고 말았다.
정씨는 “객실에서 나오는 아내에게 얼른 들어가라고 손짓한 내가 죄인”이라며 눈물을 쏟는다. 어디 이런 가슴 아픈 사연들이 한둘이겠는가. 허나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을 놓아 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눈앞에서 차디찬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가슴이 타들어가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상일 것이다.
그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국민의 마음도 아프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눈과 귀는 온통 진도 앞바다를 향해 있는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주부도 있고,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 세월호 속의 아이들이 떠오른다는 청년도 있다.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는 직장인도 있다. 어쩌면 온 국민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모두 이 아픔을 가슴에 묻어두자. 그러나 결코 이 비극을 잊지는 말자.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체계적인 안전점검과 안전의식의 부재가 빚은 인재(人災)임이 분명하다. 또다시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국민 안전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 그것이 남아 있는 우리의 역할이다.
그러자면 먼저 선장과 승무원들의 직무유기, 초기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구조에 실패한 해양경찰의 안이한 대응, 정부 전체의 초동 대응 실패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박의 안전을 무시한 증축과 허가 과정, 출항 전 선박 미정비와 안전점검 부실, 과적과 과속운행 등에 대한 책임추궁과 함께 재발방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면서 남긴 교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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