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고가도로··· 서울의 옛 풍경을 되살리다

전용혁 기자 / dra@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4-06-08 15: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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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동대문운동장'·'안녕! 고가도로' 2개로 구성··· 내달 13일까지 전시
▲ 1967년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입체 교차 시설인 '삼각지 입체교차로'의 모습. 이 교차로는 1994년 12월에 철거됐다.
1920년대 경성운동장 모습도··· 평면도 청사진·운동구 구입명세서 공개

[시민일보=전용혁 기자]한 때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의 도시풍경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사라져버린,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두 시설 ‘동대문운동장’과 ‘고가도로’를 되돌아보고 안녕을 고하는 ‘석별가’ 특별전을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7월1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석별가Ⅰ 잘 가, 동대문운동장’ ‘석별가Ⅱ 안녕! 고가도로’ 두 파트로 나누어 진행되며 전시 출품작들은 2009년부터 서울역사박물관의 근현대 서울유산 수집사업에서 수집된 ▲동대문운동장의 스탠드에 부착됐던 의자 ▲운동장 간판 ▲아현고가도로 철거 부재 등의 자료들이 사용됐다.

서울반세기종합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특별전에선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발전’을 경험한 서울 속에서 끊임없이 사라지고 또 다시 생성되는 도시 구조물을 돌아보는 한편, 그 속에 함께 사라진 지난 시대의 삶의 흔적과 기억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잘 가, 동대문운동장’

서울시 중구 을지로 7가,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서 있는 자리에는 얼마 전까지 한국의 스포츠 발전사와 함께 한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다.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가 해방 후,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1984년에는 잠실주경기장의 개장과 함께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이름이 바뀐 채 존속하다가 2008년 완전히 철거돼 폐장됐다.

동대문운동장 탄생에서 철거까지 80여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잘 가, 동대문운동장’ 전시의 구성은 크게 ▲동대문운동장의 시간 ▲동대문운동장과 사람들로 나뉜다.

동대문운동장의 ‘시간·탄생부터 철거까지’는 80여년 운동장 역사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경성운동장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조선시대 군사시설인 하도감 터로서 군사훈련을 하던 장소가 스포츠 훈련장이 된 셈이다.

동대문운동장 철거 당시 야구장 부지에서 발굴된 삼지창이나 철제류 등은 조선시대 이 일대의 군사적 역할을 짐작하게 하는 유물이다.

또 운동장 건립 당시에 작성된 ‘경성운동장 평면도 청사진’(1926) ‘운동구 구입명세서’(1926) 등은 초창기 경성운동장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로써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조사돼 공개된다.

경성운동장 시기에 조선신궁경기대회, 전조선경기대회, 순종황제 장례식 등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치루어졌던 여러 행사 모습을 대회 참가장, 상장, 메달, 트로피류 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해방 직후에는 정치동원의 장으로도 수시로 이용되던 서울운동장은 1970년대 고교야구 전성기를 맞이하며 ‘스포츠의 성지’로 올라선다.

이 코너에서는 서울운동장 시설 정비의 이정표가 된 조명탑 설치에 관련된 문서, 박대통령컵 축구대회 및 고교야구 우승기, 팜플릿, 포스터 등을 비롯해 프로야구 원년 트로피 등을 선보인다.

잠실운동장 주경기장이 1984년 개장하면서 ‘아마추어의 산실’로 조용히 제 역할을 하던 동대문운동장은 2004년 운동장내에 풍물시장이 조성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다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 발표 이후 2007년 철거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 코너에서는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대한 찬반 논란과 철거 반대 측의 투쟁의 모습을 연출과 사진,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전시한다.

동대문운동장에서 멋지게 활약했던 스포츠 스타들의 모습을 다루는 ‘동대문운동장의 영웅들’에서는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에서 활약한 손기정, 서정권 선수를 비롯해 차범근, (故)최동원, 박노준, 김건우 선수 등 서울운동장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모습을 각종 영상과 소장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또 동대문운동장 근처에서 먹고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인 ‘동대문운동장 옆 사람들’에서는 서울운동장 시기부터 현재까지 을지로 6·7가 일대에서 ‘동대문운동장 특수’를 누리며 스포츠 관련 생업에 종사했던 스포츠상가 및 식당 주인 등 일반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연출 및 재현을 통해 생생하게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스포츠사, 도시사, 정치사회사의 교차된 시각으로 동대문운동장의 역사를 깊이 있게 전시함으로써 ‘동대문운동장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이를 위해 대한체육회, 대한야구협회 등 체육계뿐만 아니라 풍물시장 상인회, 체육시민연대 등 동대문운동장과 관계한 여러 단체와도 긴밀히 협조했다.


■ ‘안녕! 고가도로’


‘안녕! 고가도로’ 특별전은 산업화의 화려한 상징에서 미관을 해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고가도로의 역사를 통해 서울의 변화상과 우리의 가치관의 변화를 돌아보게 한다.

지난 3월26일, 우리나라 최초의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의 마지막 교각이 철거되었고 지금까지 16개의 고가도로가 철거됐다.

고가도로는 한 때 모던도시의 이상도로였다. 현대 도시계획의 창시자들은 도시의 혼잡과 교통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묘안으로 땅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공중에서 자유롭게 달리는 고가도로를 꿈꿨다.

1960년대 서울은 폭발적인 인구집중으로 교통문제가 심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6년부터 재임한 김현옥 시장은 건축가 김수근과 함께 연희입체교차로부터 마장동까지 도심을 관통하는 고속고가도로를 구상, 서울을 입체도시화하려는 거대건설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전시장에서는 당시 이야기를 김 시장 재임시 행정2부시장이었던 차일석 씨의 인터뷰 영상 및 건축가 김수근의 순환고속고가도로 구상도(1967년)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각계 전문가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서울 도심 곳곳에 고가도로가 건설되면서 서울의 당시 도심을 시속 60km 이상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스피드시대를 열게 됐다.

이때부터 고가도로는 발전하는 서울의 도시풍경을 대표하는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고가도로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1960년대 고가도로는 가수 배호처럼 혜성 같은 인기를 얻었다. 1967년 발표된 ‘돌아가는 삼각지’는 배호를 일약 한국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고가도로 역시 ‘대한뉴스’ ‘애국가’의 배경화면과 같은 정부홍보물을 비롯해 교과서 등에 한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건축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만에 이제 고가도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발전의 상징에서 철거해야 할 흉물이 됐다. 구조물은 낡아 안전에 위협이 되고 정작 자동차 교통의 흐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로 연변 건물들의 토지이용에 장애가 돼 상권을 침체시키며 보행교통에 불편을 끼쳐 2003년 청계고가도로 철거를 시작으로 2014년 현재 아현고가도로까지 서울시의 고가도로 16개가 철거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시민들의 블로그에 담겨있는 고가도로에 대한 추억을 영상에 담아 공개하고 전시회 기간동안 운영되는 ‘안녕! 고가도로’ 블로그를 개설해 고가도로에 대한 추억의 글을 남길 수 있는 코너를 준비했다.


전용혁 기자 dra@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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