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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하려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계획이 틀어졌다. 친박계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실제 당내 친박계의 맏형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오전 최고위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발언권을 신청하고 “독단적 인사를 하고 있다”며 발끈했다.
그 때 김 대표가 당위성을 주장하며 의지를 굽히지 않자 서 최고위원은 거칠게 서류까지 집어던지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는가하면, 회의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퇴장해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고 한다.
사실 김 대표는 당일 박 이사장 외에도 인재영입위원장에 권오을 전 의원, 국책자문위 부위원장에 안경률 전 의원 등 자신과 가까운 친이계 인사들을 중용하는 인사안을 올렸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독 박 이사장만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 당시 최고위 회의는 박세일 이사장의 여의도연구원 원장 임명안건은 올리지 못했고, 권오을 안경률 전 의원의 당직 임명안건만 예정대로 안건을 올려 의결했다.
그러면, 왜 친박계는 박 이사장이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임명되는 걸 반대하는 것일까?
일단 박 이사장이 탐탁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박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 3월, 박 대통령이 지지한 행정중심복합도시법 원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불만을 품고 의원직과 정책위의장직을 던지고 탈당한 일이 있다.
이후 2012년 총선 때는 ‘국민생각’을 창당해 새누리당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전여옥 전 의원을 영입하는 등 박 대통령과는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인사다. 특히 박 이사장은 당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대표 영입에도 공을 들인 바 있다.
이에 따라 비록 그가 지난 대선에선 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지만 지금도 친박 의원들 사이에선 ‘해당(害黨) 행위를 했던 사람’이라며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가 적지 않다.
더구나 그런 박 이사장을 하필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하려고 하니 반발이 더욱 거센 것이다.
여의도연구원은 평시엔 정책 연구가 주 업무다. 그러나 총선에서는 공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공천의 핵심 기준 중 하나인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총괄하는 기관이 바로 여의도연구원이다. 이른바 ‘친박 학살’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방호 당시 사무총장은 공천 탈락한 현역의원들의 항의에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댄 일도 있었다.
친박계는 그때처럼 김 대표가 2016년 총선 때 ‘친박 학살’을 재연하기위해 의도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박 이사장을 여연 원장에 임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친박계의 이런 우려가 한낱 기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대학살을 경험했던 친박계가 갖는 트라우마는 상당하다.
그 트라우마가 결국 친박계의 세결집을 부르고 있다.
실제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국가경쟁력 강화포럼’을 중심으로 친박계 의원들이 오는 30일 대규모 송년 모임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는 서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을 지낸 홍문종 의원을 비롯해 김태환·안홍준·유기준·이철우·김현숙 의원 등 무려 30여명의 의원들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들은 ‘단순한 송년 모임’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그간 마땅한 구심점 없이 지리멸렬했던 친박계 의원들이 이날 회동을 계기로 세를 결집해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 친박계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한 물밑 논의가 진행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다 보면 새누리당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해묵은 친박계와 친이계의 해묵은 계파갈등이 재연될지도 모른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노계와 비노계의 갈등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그런 모습을 뒤따라가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이다. 따라서 김 대표는 박세일 이사장을 여연 소장에 임명하려는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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