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사법부, 자업자득이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6-03-02 11: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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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이른바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법·대법관 증원법)이 결국 모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지난 28일까지 사흘 연속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듯 3개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법왜곡죄는 법원·검찰뿐 아니라 경찰도 도입에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만일 1심에서 유죄가 나왔는데 2심에서 무죄가 나온다면 당사자는 수사한 경찰·검찰과 1심 판사를 모두 고소할 것이고, ‘도돌이표 수사’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법 왜곡죄는 판사와 검사의 목에 보이지 않은 정치적 족쇄를 채웠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한마디로 민주당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오면 '법을 왜곡했다'라는 혐의로 처벌하겠다는 사실상의 협박 아닌가.


이른바 ‘4심제’로 불리는 재판소원법은 민사·형사·가사·행정 등 개별 재판의 효력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어 혼란이 예상된다. 확정판결이 늦어질수록 임차인이나 임대인에게 금전적 이득이 되는 명도소송이나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는 재판소원이 ‘버티기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4심제 도입은 온전히 이재명 대통령만을 위한 특혜 법안이라는 지적이 있다.


즉 이미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된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판결을 뒤집기 위해 사법 근간을 흔드는 시도라는 것이다. 권력자의 유죄를 무죄로 뒤집기 위해 국민에게 끝없는 재판이라는 희망 고문을 하는 셈이다.


또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를 권력의 거수기로 만들겠다는 독재의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대법관 14명 체제는 1987년 개헌 이후 39년 동안 이어졌는데, 2030년에는 갑자기 26명으로 늘어난다. 이 대통령이 임기 동안 총 22명을 임명하게 돼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야당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국민의힘은 사법파괴 3법을 저지하기 위해 3일부터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지지자들이 함께하는 장외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그런 외침을 듣고 거부권을 행사할 리 만무하다.


이런 가운데 사법부라도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할 텐데 사법부는 더욱 무기력하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일방적인 사법 개편에 반발하며 지난달 27일 사의를 밝힌 뒤로 여권에서는 조 대법원장을 향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당신은 대법원장으로서 자격이 없으니 사퇴하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했고, 이성윤 최고위원은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탄핵에 직면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여권에서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폐지 추진마저 거론되는 상황이다.


거대 집권 여당의 일방적인 입법 폭주 속에 전례 없는 법치주의 및 사법 체계, 그리고 사법부 붕괴 위기의 단면을 보여주는 참담한 장면이다.


그런데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1일 사법개혁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가 입장을 낸 것은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직전인 지난달 23일 “개헌 사항에 해당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 마지막이다.


대법원은 12~13일 전국 법원장 정기회의를 열고 다시 한번 사법개혁 3법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이번 간담회는 매년 3월 열리는 정례 회의다.


하지만 사법부가 나름대로 공청회와 전국 법원장회의 등으로 우려를 표했는데도 법안이 다 통과되어버리니까 법원 내부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다. 사법부가 권력 앞에 스스로 누워버린 대가다. 파기자판으로 끝낼 수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조희대 대법원장이 자신의 손에 피 묻히기 싫어 파기환송 한 대가이고, 진행 중인 5개 재판을 모두 중단해버린 그 대가다. 대법원이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판재개를 선언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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