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외국어를 앞세우는 정치적 용어 전쟁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4-12 13: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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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병 전 국회의원



외국에서 생성된 제도와 용어를 차용하면서 그 용어의 매력도가 높으면 자신의 주장과 활동에서 대의명분이자 실천적 방안으로 즐겨 사용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본래의 뜻과 다르게 쓰이는 용어가 많다. 국민적 호감이 높으면 왜곡과 조작을 통해서라도 자기 진영의 대응논리로 활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국민의 거부감이 강하면 상대에게 덮어 씌우려고도 애쓴다. 그러다보니 용어 전쟁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치열한 선점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경우가 옴부즈맨, 매니페스토, 비정부기구, 거브넌스 등이다.


옴부즈맨은 스웨덴에서 시작된 제도로 의회가 행정부를 대신해 국민의 민원 해결을 위해 운용하는 제도다. ‘의회의 대리인’이란 뜻처럼 1909년 스웨덴 의회에 설치한 후 소수의 의원들이 처리하기엔 국민적 요구 사항이 너무 많아 그 대리권을 부여해 역할 하도록 만든 제도이다. 군사 기밀, 성 문제 등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일부를 제외하고 접수되는 모든 민원을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매니페스토는 영국에서 생겨나 일본 등지에서 부분적으로 도입해 활용하고 있는 제도로 미리 정책이행점검표를 공시하고 당선되면 제대로 수행하는지 평가받는다는 방식이다. 특히 영국은 총선에서 각 정당이 책자로 된 매니페스토를 배포한 후 선거에서 승리하면 매니페스토에 따르도록 하면서 출발했다. 그 의무 여부를 놓고 1947년 하원에서 법적인 구속력은 부정되었지만, 성격상 정치적인 구속력은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와세다 대학 등에서 심도 깊에 연구하였고, 특히 일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 단체장 선거 후보자들이 공약에 대한 약속처럼 제시해 당선 이후 업무 수행과 이행도를 점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비정부기구(NGO)는 현대 사회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진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부분을 민간에서 대체해 역할 하는 조직체를 말한다. 특히 생활민원, 친환경, 자연보호 등의 분야에서 그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정부가 못 하는 일을 대신해 수행한다. 재정을 자체로 조달하고 비정치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부수적일 뿐이다.


거브넌스는 미국에서 생겨난 용어로 정부(거브먼트)를 포함하는 비정부적 영역까지 포괄해서 국가경영 또는 공공의 역할을 전통적이거나 일부 확장한 차원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조건과 환경 아래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공개적인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국가의 여러 분야에 걸친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정관리 체계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특정 진영이나 정치 세력이 이들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적이며 보편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앞세운다. 그 특징은 한결같이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정확한 이해가 어렵다. 이런 중에 편리하게 자기 입장과 주장을 내세우며 이 용어를 적당히 각색해 보편타당한 논리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의 합리적 정당성을 담보하려는 자기 미화에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치단체이면서 시민단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본인들부터 지켜야 할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용어임에도 남을 공격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이다. 납세와 병역 의무라도 최소한 이행하고서야 생겨나는 시민적 권리를 전방위적으로 확장 해석해 본인의 책무에 대해서는 도외시한 채 역할과 혜택만을 넓혀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혹세무민과 내사남불도 극심하다.


이젠 이러한 용어 왜곡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자면 학계와 언론에서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정부도 마냥 공격만 받을 것이 아니라 정확한 개념을 정립하고 이해해서 국민의 혼란과 미혹을 막아야 한다. 사회 전반에서도 과감하게 그 개념에 맞게 용어를 적용하도록 이끌어가야 마땅하다. 특히 법적 구속력과 그에 따른 자기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부터 그 기준과 활동방식에서 엄격하게 지키도록 노력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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