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GP는 고립된 섬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6-26 20: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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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진 국회의원 {ILINK:1} 어제는 최전방 GP 총기 사고로 희생당한 장병들의 영결식에 다녀왔습니다. 태극기로 덮인 8개의 관, 당당한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국방의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던 고인들은 그렇게 싸늘하게 돌아왔습니다. 더구나 같은 내무반에서 동고동락하던 동료의 수류탄과 총탄에 의해 쓰러져야 했기에 슬픔은 더없이 컸습니다.

범죄학의 기초이론은 범죄가 개인의 잘못이냐, 아니면 환경이 범죄를 유도했느냐의 고전적인 이분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 역시 사고자인 김 일병의 적응실패와 내성적인 성격에서 기인했는지, 아니면 언어폭력 등 부대 환경에서 비롯됐는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진상규명을 더 해봐야겠지만 김 일병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도, 그렇다고 열악한 환경 탓만 하는 것도 모두 불충분한 접근일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탈권위적이며 자아의식이 강한 신세대 장병들을 위한 병영문화 개선과 평소 심리상담을 통한 사고예방 대책이 시급합니다.

아울러 최전방 GP와 같은 고강도 근무기강이 요구되는 부대 장병들에게는 사기진작과 사고예방을 위해 특별수당과 휴가 실시, 그리고 복지혜택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남북이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순수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장병들에게 일방적으로 의무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특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도의 긴장감 속에 생명을 담보로 근무를 해야 하는 최전방 GP 근무자들에게는 의무와 희생을 강조하기에 앞서, 의무 수행에 따른 실질적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국방부는 뒤늦게 병영문화 개선, 최전방 GP 리모델링 등을 이번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내놓았습니다. 물론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기적인 개선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검토해야 할 시점입니다.

현재 남과 북이 설치하고 있는 GP의 운영실태는 사실상 정전협정의 위반입니다. 남과 북은 경쟁적으로 비무장지대에 GP를 설치했고, 수류탄과 자동화기를 배치했습니다.
물론 GP는 적 동태 감시, 전쟁 징후 조기경보, 정전협정 위반 감시 등 군사적으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GP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GP 내 병력배치를 최소화하거나 철수시키고, 무인감시 장비를 설치하여 기능을 대체하는 방법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도의 긴장감과 심리적인 압박, 그리고 외로움에 둘러싸인 고립된 섬인 GP가 존재하는 한 이번과 같은 참사는 재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GP가 아니더라도 최전방에 배치된 GP는 특별한 개선책이 없는 한 잠재적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남북한이 비무장지대에서 최전방 GP를 공동철수 하는 것만이 참사 예방의 근본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북한 대치상황을 들어 GP 철수의 시기상조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GP는 과거 정보 전력이 부족하던 시절 우리 군의 최전방 눈으로서의 역할을 해왔지만, 첨단장비가 군의 눈 역할을 하는 현대전에서 GP는 더이상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아닙니다.

과거와 같은 무장공비에 의한 국지도발의 전술적 가치가 적어지고, 장사정포 등을 통한 선제기습 공격 전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GP의 운영은 오히려 군 작전의 현대화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 전술의 개념에서 볼 때 후방기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장거리 정밀타격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최근 군 복무기간 단축, 군 병력의 감소 등에 따른 무리한 병력 운영으로 인해 GP 근무의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만 보더라도 입대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병을 GP에 투입하고, 문제가 제기됐던 장병을 재투입하는 등 GP 근무인력의 선발과 운영에 심각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의 남북화해협력 무드에 따라 최전방에서 북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우리의 장병들에게 심적인 동요나 근무기강 해이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이번 참사도 이유야 어찌되었건 적을 향해 쏘라는 총으로 내무반 동료들을 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장병들을 과도하게 위험에 노출시키고, 군의 전력에 기대한 만큼 큰 효과도 주지 못하고, 남북간에도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내 GP는 남북한 공동철수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는 말로만 남북한 협력과 평화를 논하지 말고, 남북한 상호 신뢰구축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충격적인 참사의 슬픔을 딛고 다시는 우리의 젊은 장병들 중에 비극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고 예방대책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때, 고인들 역시 하늘에서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나라로 떠난 고인들은 물론 꽃다운 젊음을 나라와 국민을 위해 바치고 있는 국군 장병들의 노고와 희생을 단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의 고인이 된 8명의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며, 저 세상에서 부디 편히 쉬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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