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료 자율화는 공보육의 포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6-29 20: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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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혁 재 참여연대 {ILINK:1} 최근 ‘보육료 자율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원리의 도입을 통해 보육 서비스의 질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보육료 자율화는 잘못된 정책이다. 보육의 공공성을 간과하고 국가책임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육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당할 새 세대를 키워내는 일이다.
따라서 보육은 국가가 미래세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워야 할 사회적인 책임과 여성의 사회참여 지원, 시민으로서 아동의 보육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다. 보육은 더 이상 한 가족만의 책임이 아니다. 가족 구조의 변화, 출산율의 저하와 고령화,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 확대 등 보육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사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보육수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공적 재원을 투입하며, 관리하는 등 보육은 공익성을 추구해야 한다.

지난 5월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가 아동별 지원체계 확립 및 이에 따른 보육재정의 확대방안을 국정과제 보고회의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예산문제를 내세운 정부 부처 내 반발로 채택되지 못했다. 보육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이며, 국가와 사회가 그 책임을 져야 할 핵심적 서비스 영역이다. 예산 부족을 내세워 가계에 육아비용 지출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육료를 자율화한다면 보육공공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보육료 자율화’는 공보육을 부실화시키고 가뜩이나 무거운 사교육비 부담을 더욱 늘릴 것이다.
보육에서의 빈익빈 현상이 강화돼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화되고, 왜곡된 조기교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보육시설과 유치원의 가격방식이 차이가 있고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 요구가 있다는 것을 내세워 육아비용 상한선 규제를 풀겠다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경제부처와 일부 경제학자 등 보육료 자율론자들의 목표는 영리법인의 육아지원시설 참여 허용과 육아비용 상한선 폐지에 있다. 이것이 실패한 사례를 호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주에서 육아비용이 자율화된 이후 육아비용이 10년 사이에 400% 이상 인상됐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2004년에 유치원 수업료를 자율화했지만 보육의 질은 별로 높아지지 않은 채 비용만 늘어나고 말았던 경험이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보육료 자율화에 공보육정책의 수장인 여성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여성부는 일관되게 공보육 강화를 주장하면서 ‘보육료 자율화’처럼 공보육의 부실화를 초래할지 모르는 방안들은 반대해 왔다.

그런데 왜 장관이 여성부의 기존 정책기조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였을까.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후세대를 키우는 일은 돈이 얼마가 들던 간에 정부가 책임을 지라’고 했던 대통령의 발언도 구두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보육료 자율화보다 먼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보육공공성의 확대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보육의 인프라도 매우 취약하고 국가의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공립 보육시설은 겨우 아동기준 10%대에 머물고 있으며, 보육재정 가운데 공공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공립 인프라의 확충’, ‘저소득층은 물론 중간계층에게까지 공보육 접근성의 보장’ 그리고 ‘높은 보육의 질 관리’ 등이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 보육은 공공서비스로서의 성격이 매우 취약하다. 보육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복리를 보장하는 공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모든 영유아에게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연령과 발달에 따라 적절한 교육과 충분한 보살핌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누릴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부모의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는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육아의 사회적 지원을 위한 재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실태조사 결과 아동이 있는 가구 중 56.2%가 국공립시설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까닭은 ‘비용이 저렴’(54.1%)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국공립 시설비율은 겨우 5%, 아동 수를 기준으로 11.5% 정도의 비율이다. 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500여개 읍·면·동에 국공립보육시설이 한 곳도 없음이 밝혀졌다. 국공립 보육시설은 농어촌 취약지역과 특수보육 뿐 아니라 읍·면·동 단위에 최소한 골고루 설치해야 한다.

국공립보육시설의 비율을 아동기준 50%까지 늘려야 한다. 현재 공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방과 후 아동의 보호를 위한 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육아비용 중 정부의 재정 부담률을 현 25% 수준에서 50% 수준으로, 장기적으로는 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인 70%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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