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으로 연주한 감성적 멜로디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6-02-02 2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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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준(한나라당 의원) {ILINK:1} 최근 여당의 사학법 날치기처리에서 시작된 국회 파행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현상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성과 감성의 충돌이 아닌가 한다.
이성과 감성의 대립 및 조화에 관한 이야기는 문학이나 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그리스 문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 디오니소스적 정신과 아폴론적 정신을 지적하고 있는데, 아폴론적 정신은 이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고, 디오니소스적 정신은 원초적 삶의 에너지라고 한다.
이러한 아폴론적 정신과 디오니소스적 정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디오니소스적 열정과 욕망이 아폴론적 형식으로 구현된 것이 ‘그리스 비극’이다.
그리스 비극은 대부분 인생의 비극적 특성, 즉 우연과 불일치, 절망과 도착, 예측불가능의 반전 등을 뛰어난 극적 구성을 통해 표현해 내고 있다. 감성과 이성을 주제로 한 좀 더 친숙하고 대중적인 문학작품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을 달리 하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학문의 연마를 통해 지식의 확장을 추구하는 나르치스와 삶을 직접 접촉함으로써 그것을 경험하고, 이를 통한 세계와의 관계적 일치를 도모하는 골드문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두 친구가 다시 만나 각자가 살아온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인생에서 그 두 가지 주제가 모두 인간생활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정치에서도 이성과 감성이 존재하고, 서로 충돌하면서 조화를 이루게 된다. 태생환경과 지지기반 등을 감안하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그동안의 행보를 보태어 생각하면, 한나라당은 이성적 성향이 강하고 열린우리당은 감성적 성향이 강하다고 판단된다. 한나라당은 아폴론적이고 열린우리당은 디오니소스적인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의 대화를 무시한 채 사학법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날치기 강행처리함에 따라 한나라당은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목적뿐만 아니라 절차에 있어서도 정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나 절차적 정당성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여당의 오만한 행동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받은 한나라당은 본래의 모습인 이성적 성향을 일시적으로나마 뒤로 하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곧 이어 디오니소스적인 격정에 휩싸여 국회를 벗어나 장외투쟁을 시작했고, 연말의 법률안과 예산안처리에 불참하였다가 우여곡절 끝에 2월 임시국회에 등원했지만, 아직도 아폴론적인 이성에 의한 합리적 판단보다는 디오니소스적 격정이 앞서는 분위기이다.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재개정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국회에 등원하기로 하였지만, 깊게 골이 파인 감정은 여간해서는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로 국회를 이끌어간다면 양당이 매사에 감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많으며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사와는 배치되므로 이제는 한나라당은 고향인 아폴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제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야당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적 성향이 강한 한나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장관과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황우석 교수 사건과 윤상림 사건에 관한 조사, 총체적으로 부실하고 무기력한 외교정책의 배후가 되는 북한 인권문제와 북한 핵문제에 대해 적극 참여하여 의혹을 해소시키고 대안을 제시하여 견제와 비판기능을 가진 야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아폴론이 한나라당에 요구(demand)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스 비극의 주제는 주로 감성이 이성을 지배할 때의 파국적이며 비정상적인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연극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보내는 것이며, 이성적 판단이 감성적인 격정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에 있어서 훨씬 도움이 되며 때로는 손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끌리는 경향이 간혹 있으며, 열린우리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이러한 성향을 잘 이용해서 승리를 하였고, 한나라당은 그렇지 못해서 패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것을 잘 묘사하고 있는 그리스 비극처럼 결국은 모두가 원치 않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니체가 말하는 도취와 열광 등 원초적 삶의 에너지라고 하는 디오니소스적 열정과 욕망을 절제와 균형, 조화와 질서 등의 이성의 원리인 아폴론적 형식으로 완성하는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이성적인 음악코드를 주로 연주하도록 제작되어 있던 한나라당이라는 악기는 그동안 어울리지 않는 감성적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격정적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관철시키는 이성적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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