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는 게 편”이라고 누구 편을 들려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고 느껴서입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권력이 엄존했던 시절만 해도 이런 일쯤은 다 덮고 숨겨져 문제도 안 됐는데, 지금은 이게 무엇이냐고. 공사 불문하고 일거수 일투족 공직자의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상이 너무 심하다구요. 분명한 것은 공직자는 몸가짐 하나하나를 놓고 여론의 혹독한 매질을 받고 법적책임은 물론, 무한한 책임을 져야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추행 술판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사회 한구석에 뿌리박혀있던 비뚤어진 성 문화를 적나라하게 노정시켰습니다. 성추행 비난에 몰리자 “식당 주인인 줄 알고 그랬다”라고 둘러댄 성추행 주역 최연희 의원의 해명(?)은 궁지에 몰려 무심코 둘러댄 말이라서 더더욱 문제가 심각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성추행을 해도 된다’는 잠재의식의 이중적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의 또 한 의원은 성추행 술판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엽기’ 퍼포먼스로 언론의 주목 아닌 주목을 받았습니다. 성추행 사건 재발을 막겠다면서 폭탄주가 든 잔을 직접 들고 나와 망치로 부숴버리는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폭탄주를 조절해 마실 수 있는 자제력 부재가 문제이지 폭탄주 자체가 문제란 말인지요? 당을 떠나 같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의 부덕(不德)을 같이 마음 아파하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해 한 건하려고 한 것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3.1절 골프로 코너에 몰린 이해찬 총리 사건은 탈권위 시대를 사는 공직자가 올바른 몸가짐과 자세를 갖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공직자가 뭐 도덕군자냐?”며 볼멘소리를 내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예전과 같은 공직자 자세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단돈 몇 만원이라도 골프 이용료를 남이 내주는 것도 공직자 윤리위반으로 문제되는 세상입니다. 일반 골퍼들 사이에서는 별 문제가 안 되는 소액 내기골프도 공직자의 경우에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시대가 됐습니다. 공직자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는 공직자에게 큰 불편이고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면 공직자들은 힘들어도 ‘혹독한(?) 국민들의 기대’에 맞춰 변화하고 희생을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물결의 선두에서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고 갈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위 글은 시민일보 3월 14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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