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저는 요즘 1시쯤에는 잠을 청하는데, 오늘은 포기했습니다.
왜냐구요?
‘요덕스토리’를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여전히 뛰고 제 정신은 찬물을 끼얹은 듯 명료함 그 자체입니다.
고된 여행의 피로도 ‘요덕스토리’앞에서는 말끔히 가셨습니다.
아니 여행의 피로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입에 올려서는 안 될 표현처럼 느껴져서입니다.
토요일 북클럽친구들과 ‘요덕스토리’를 보기로 했잖아요.
요덕스토리가 온갖 고난과 방해 속에서 막이 올려졌다는 소식을 여행 중에 들으면서 다행스럽다고, 참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자마자 ‘북클럽+요덕스토리’를 다소 무리하게 진행했습니다.
지난 24일 금요일 러시아에서 돌아와서 토요일인 오늘은 그동안 돌보지 못한 집안일을 했습니다. 냉장고 청소도 하고 입맛 없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카레라이스도 만들었지요. 그리고 나서 서둘러 약속장소로 나섰습니다.
카레냄새가 뱄을까 싶어 평소 안 뿌리는 연한 향수도 ‘페브리즈’ 대신 뿌리고 갔지요.
오늘 북클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목표’를 향해 전원이 명중시켰구요.
요덕스토리를 보러 가는데 이미 보신 분들이 많아 단촐하게 갔지요. ‘의무방어전으로 생각하자. 혹시 작품성이 떨어지더라도 박수 많이 치고 애쓴 분들 격려하자’는 다짐을 하며 갔어요.
교육문화회관에 도착하니 보러 오신 분들이 아주 많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들의 모습이 아주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막이 오르고 저는 정신없이 ‘요덕스토리’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실제상황’이라는 것이죠.
그것도 우리 앞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저는 일분일초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비극을 체화시킨 우리 한국인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아이를 낳은 여성이면 그 누구나 가슴저미는 핏덩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비극을 잉태하고 그 고통 속에 사는 반쪽 민족으로서의 처절함이 요덕스토리에 녹아있었습니다.
어느새 끊임없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대변인을 그만두고는 짬짬이 공연을 가곤합니다.
훌륭한 공연은 감동을 주며 사람을 움직이고 정화시킵니다.
발레를 볼 때 그 완벽한 선과 절제미에 감동한 적도 있고 오페라의 아리아를 듣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뉴욕에서 미스 사이공을 볼 때도 제 옆에 앉아 굵은 눈물을 조용히 흘리던 한 노신사와 함께 저 역시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작품도 이 ‘요덕스토리’처럼 저를 내내 하염없이 울리진 못했습니다.
요덕의 진실, 요덕의 절규는 우리 모두를 울게 합니다.
남한에 탈출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려고 다시 북에 갔다 요덕수용소에 갇힌 이태식의 노래는 특히 우리 가슴을 강타합니다.
“신이여, 아버지시여,
남조선에만 계시지 마시고
이 공화국에도 와주시옵소서.”
라는 대목에서는 저는 목 놓아 울고 싶었습니다.
TV드라마 속 연인들의 애틋한 사랑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왜 이리도 덧없이 느껴지는 건가요? 왜 이리 허무하며 ‘감정의 허영’으로 느껴지는 것인가요?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인권을, 인간성을 요구하는 ‘요덕스토리’앞에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조선에 있는 우리는 얼마나 비겁한가요?
무려 세번이나 북한 인권에 기권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낯을 들고 역사 앞에 살아갈 수 있나요?
요덕수용소에서 쥐를 잡아먹으며 환호하는 굶주린 북한동포를 뒤로 하며 우리는 어떻게 배부른 세끼를 먹을 수 있나요?
원만한 남북대화라는 그 신성불가침한 노무현 정권의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 북한 동포들이 죽어가고 또 죽어가야 하나요?
연출을 맡은 정성산 감독은 말합니다.
“북한 땅에 수용소가 없어지는 날까지 무대에 올리겠다”라고요.
정성산씨는 이제 북한 인구가 1700만~1900만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굶어서 죽고 탈출하다 죽고 그리고 수용소에서 죽고 “최근 들어 특히 수용소에서 이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 상황이다”라고 고통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의원들에게 모두 초대장을 보냈건만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비참하고 가슴 미어지는 현실 앞에서 펑펑 목 놓아 울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자유와 생명을 외치는 요덕스토리의 처절함에 감히 다가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요덕스토리에 눈과 귀를 닫은 노무현 정권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위 글은 시민일보 3월 28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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