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노무현 정부 3년이 넘은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싸늘하기만 하다.
생계형 경제범죄가 급증했고 신용불량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기는 가구,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국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중산층은 줄어들고 빈곤층만 양산되고 있다는 우울한,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통계가 연일 언론지상에 오르내린다.
1년에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두 자녀와 엄마가 함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네살 난 지체장애인이 장롱 속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되고, 홀로 지내던 초등학생이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는 등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건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부보다 서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감은 어느덧 사라졌으며 분노로까지 치닫고 있다. 과연 노무현 정부가 약속한 ‘살기 좋은 대한민국’은 어디로 갔는가?
노무현 정부는 그 동안 참여복지 5개년 계획, 일자리 창출 방안, 희망한국 21, 저출산·고령대책 등 듣기에 그럴 듯한 복지정책을 계속 내놓았다. 그
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정책들은 대부분 각 부처·부서별로 해오던 일을 재포장하거나 그냥 나열한 ‘짜깁기’식 청사진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정책은 요란한데 효과는 느껴지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종합적 사회안전망 대책으로 ‘희망한국 21’을 내놓았다.
그러나 ‘희망한국 21’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1만6000여명 뿐이다. 최소 250만명의 빈곤층은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다.
여기에 의료·주거·보육·교육 등 욕구별 빈곤대책이 미흡하여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주기엔 너무나 미흡하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는 앞 다투어 일자리 창출사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자리는 빈곤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인건비 보조를 통한 머리수 채우기, 실적용 전시사업에 불과하다. 정부가 앞장서 나쁜 일자리를 만들고, 그 결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기본적 사회안전망인 사회보험제도 또한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신빈곤층 문제 해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보자.
당장 국민연금이 필요한 현재의 노인층 중 72%가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국민연금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상황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늘어나면서 연금을 납부해야 할 현 세대는 국민연금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안이하게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건강보험은 또 어떠한가? 건강보험 보장성은 매년 크게 축소되고 있어, 의료에 대한 거의 모든 경제적 부담이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 지방분권정책이라는 명분하에 중앙정부가 하던 복지사업 중 총 67가지, 약 5958억원 규모의 사업을 지방정부로 이양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지금 지자체들은 당초 계획된 복지서비스와 인건비를 오히려 축소하고 있다. 새로운 복지사업은 꿈도 못꾸고, 다른 지역 복지대상자가 우리 지자체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을 기피하는 상황이다. 지자체의 재정상황에 따라 지역간 복지수준에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복지정책은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쓰기에는 우리의 복지상황은 너무도 절박하다. 서둘러 우리의 복지제도를 변화하는 시대흐름과 국민의 상황,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에 맞추어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 기본 방향은 소모적 지출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생산적 투자로 연결되는 복지일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중심의 공공부조제도는 현 시스템을 유지한 채 무조건 예산을 늘리기보다 빈곤층의 필요에 맞게 전문화되고 다양화됨으로써 예산 쓰임의 효과성과 효율성이 동시에 달성될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한다. 또 조속히 기초연금 제도를 도입, 전 국민의 노후 보장을 책임지는 진정한 국민연금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암을 포함하여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중증 질환자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을 줄여주고 비급여 부분에 대해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중증질환 완전보장제’를 도입해야 한다.
복지 예산은 아직도 부족하다. 그러나 세금을 무조건 늘려 해결할 수만은 없다. 꼭 필요한 복지지출을 위한 추가재원은 불요불급한 정부지출과 국민 혈세의 낭비를 줄여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와 불필요한 대형국책사업과 낭비적인 균형발전 예산이 계속 팽창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 투입기관의 헐값 매각과 외국 기업에 대한 과세 실패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부문에서만 좀 더 신중해도 복지 예산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복지는 결국 일자리이다. 우리 사회의 신빈곤층 문제와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사회복지 분야의 무조건적 지출이 아니라 경제 성장과 기업 활동의 활성화를 통한 민간 분야에서의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다.
우리 국민이 꿈꾸는 ‘따뜻한 대한민국’은 함께 일하는, 그래서 함께 땀 흘려 따뜻한 그런 대한민국이라 믿는다.
<위 글은 시민일보 5월 9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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