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보면서 문혁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지식인들의 하방에 대해 러시아 말기 ‘인텔리겐챠’들의 브나로드운동, 상록수의 농촌활동처럼 혁명적 낭만주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환호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여러가지 허구의 사실에 기초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부분이 많았다. 당시 제한된 정보상황에서 불가피한 면도 있었겠지만 소위 진보적 인텔리들의 논리전개의 헛점이 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나중에 이영희 교수가 자기반성을 하기는 했지만 나 역시 전환시대의 논리에 전율하였던 때이기도 하다.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은 1980년대 전두환정권때 대표적인 금서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낡은 좌익페러다임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평화, 개혁, 발전을 위한 제2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삼봉 정도전을 인용하여 그의 개혁사상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정치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재해석하여 오늘의 자신의 행동의 근거를 찾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학생운동에 최초로 주체사상을 퍼트렸던 서울법대 운동권 학생 김영환을 봐도 그렇다. 그는 북한방송을 듣고 주체사상에 심취하여 소위 강철시리즈라는 팜플릿을 발간한다. 막심 고리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라는 소설에서 인용한 강철, 여기서 그는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었다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개된 우리나라 학생운동의 역사를 비정통으로 돌리고 일제하 항일빨치산투쟁부터 주체사상으로 이어지는 운동만이 정통성을 가진 것으로 정리하여 민족자주의식에 갈망하던 당시 학생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 역시 도서관 사서출신으로 역사서 인용을 자주하고 통치에 활용하였다. 1959년 4월 마오는 명(明) 왕조의 해서(海瑞)를 띄웠다. 부패 관리를 내치고 황제의 실정을 비판하다 파면된 청백리다. 마오는 “해서가 황제를 공격한 것은 충성심에서 나왔다`며 “해서를 배우라`고 했다.
두 달 뒤 인민일보는 ‘해서, 황제를 꾸짖다`라는 글을 실었다. 역사학자로 베이징 부시장이던 우한이 쓴 것이었다. 이듬해 그는 이를 희곡화한 `해서파관(罷官)`을 낸다. 이 역사극은 필화 사건에 휘말린다.
당시 마오의 권위는 떨어지고 있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 탓이다. 대신 그 후유증을 실용주의 노선으로 극복하려던 류사오치(국가주석)와 덩샤오핑(서기처 총서기)은 입지를 넓혀 갔다. 야오의 논문은 마오 4인방의 권력 장악과 반(反)수정주의 투쟁을 위한 문화대혁명의 프롤로그였다.
중국 대륙을 파괴와 폭력으로 얼룩지게 한 광기(狂氣)의 1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한은 그 속에서 69년 옥사한다. 그의 죽음은 명 태조 주원장이 글자를 트집 삼아 수많은 문인·관리를 처형한 문자옥(文字獄)에 견줘졌다.
요문원과 주은래. 20년형을 받고 당뇨병으로 얼마전에 옥사한 야오위안과 지금도 전 중국민의 추모를 받고 있는 줘안라이.
두 정치인의 상이한 말로를 생각하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문혁의 대표적인 구호가 조반유리였다. 반대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조원라이의 구호는 구존동이다. 다른 것은 일단 놔두고 같은 것을 추구해 가자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노선이다. 우리 역시 조반유리에서 구존동이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일본, 무섭게 발전하는 중국, 에너지자원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있는 러시아, 제2의 영일동맹으로 극동아시아 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는 미국을 눈앞에 둔 우리는 민족분단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이런 와중에 문재인 수석의 부산정권발언은 그 배경을 이해하려고 하더라도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제발 호남정권, 부산정권 이런 말하지 말자. 대한민국과 민족전체의 이익을 보고 뚜벅뚜벅 걸아나가자. APEC 총회유치에 제주도가 객관적으로 타당한 입지면 제주도에 유치하여야 되고 부산이 더 나으면 부산에 유치하여야 하는 것이지 표를 구걸하기 위하여 국책사업결정을 왜곡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당 역시 5.31 지방선거를 맞아 표를 구걸하려고 여기저기 정신없이 기웃거리고 걸리는데로 네거티브에 호소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하여 희망과 비전 정책을 이야기 해 가야한다.
위 글은 시민일보 5월19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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