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당 탈당 ‘소신파’와 ‘긴가락박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1-31 18: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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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승 편집국장 {ILINK:1} 지난해 말 정계개편 논의가 본격화 된 이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탈당 도미노’를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열린당 전당대회 준비위는 ‘대통합신당 추진’ 전대 의제를 도출해 냈으며, 중앙위원회는 ‘기초당원제’를 압도적으로 찬성시켰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탈당 대열을 막기 위해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1호 임종인 의원에서부터 이계안, 최재천, 천정배, 그리고 지난 30일에 5호 염동연 의원까지 잇따라 탈당해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한길 원내대표의 ‘기획 탈당’ 움직임마저 관측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김 대표는 최근 “가까운 의원들과 (탈당문제를)의논하고 있다”며 “원내대표직을 마감하고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31일자 신문에서 “열린우리당 탈당파의 핵심의원들이 내주 중 30~40명 규모로 집단 탈당한다는 계획 아래 의원들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탈당 시기를 늦어도 다음 달 ‘4일 이전’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4일 전대 직전은 당에 부담을 줄 수 있고, 5일부터는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정동영 전 의장도 최근 들어 부쩍 당 사수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 전 의장의 이 같은 비판은 다분히 ‘탈당 결행’을 위한 ‘명분 쌓기’ 분위기가 짙다는 것. 만약 이들의 집단탈당이 현실화 될 경우, 열린당은 사실상 당 붕괴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열린당을 떠나려고 하는가. 물론 열린당의 현재 모습이 침몰 직전의 난파선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가운데 “내가 죽지 않으려고 당을 떠난다”거나 “내가 살기위해 당을 떠난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소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모두가 소신파일까?
그 중에 정녕 박쥐는 없는 것일까?
탈당 1호인 임종인 의원은 “신자유주의를 시정할 새 정당을 만들겠다”며 첫 테이프를 끊었다. 누가 무래도 그의 탈당은 분명한 소신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탈당 2호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당을 떠난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계안 의원도 정당 운영에 크게 실망해왔던 CEO출신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소신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공화주의에 입각한 민주진보정당이 출현해야 한다”며 당을 떠난 탈당 3호의 최재천 의원 역시 소신파다.

하지만 “우리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모든 미래지향적 민생개혁세력이 결집하는 대통합신당의 길을 열어가겠다”며 탈당한 천정배 의원은 소신파로 분류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선 그가 왜 당을 떠났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그는 영남 친노세력에 맞서 민주당과의 대통합을 시도하기 위해 탈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과의 분당을 사실상 주도한 ‘천.신.정’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민주당과 통합에 대해 ‘대통합’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천 의원의 뒤를 이은 염동연 의원도 ‘호남세력 복원’이라는 소신에 의해 탈당을 결행한 사람이다. 그의 탈당 명분이 옳으냐의 문제는 뒤로하더라도 그가 이런 소신에서 탈당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김한길 의원이나 그에 동조하는 ‘기획탈당’자들은 무엇인가. 또 탈당을 위해 사전 명분 쌓기에 돌입한 정동영 전 의장의 행보는 무엇인가.

이들의 행보가 흡사 지난 2003년 발간한 필자의 칼럼집 ‘박쥐이야기’에서 말한 것처럼 ‘긴가락박쥐’를 닮지 않았는가.
긴가락박쥐는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박쥐 가운데 비교적 흔한 종으로, 채석장의 낡은 구멍이나 건물의 지붕 등에서 떼를 지어 살고 있다. 그래서 당시 필자는 민주당에서 ‘우르르’ 빠져나와 ‘신당(열린우리당)’으로 자리를 옮긴, 즉 소신 없이 떼거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을 가진 정치인들을 ‘긴가락박쥐’라고 꼬집은 일은 있다.

그런데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됐다. 이제는 열린당을 떠나 민주당으로 기어들어가야 할 판이 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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