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한신, 닮은 점과 다른 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01-13 14: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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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중국 천하가 어지러울 때 유방을 도와 항우를 멸하고, 한나라를 세운 일등 공신은 바로 한신이었다.

문제아였던 유방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무장이라고 일컫는 항우를 멸하고 패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한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유방에겐 많은 참모와 모략과 술수에 뛰어난 지략가들이 즐비했는데 그중에서도 한신은 압권 중의 걸물(傑物)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신은 유방의 토사구팽(兎死狗烹) 술수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유방은 한나라를 건국하는 데 공이 큰 한신을 배려해 일정지역을 다스리는 제왕으로 그 직위와 신분을 격상시켜 주었다.

그러나 유방은 대단한 세력을 가진 한신을 두려워했다.

한신이 혹여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하고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방은 한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런데도 한신은 자신을 향해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고 있는 유방의 경계를 도외시했다.

한신은 비록 그 재능이 출중했지만 온갖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적으로는 유방의 한참 아래였던 셈이다.

결국 한신은 한나라 고조 11년에 거병을 했으나, 오히려 여후와 소하의 모략에 걸려 장략궁에서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한신은 죽임을 당하기 직전 “괴통의 계교를 듣지 않았던 것이 원통하다”고 몇 번이나 후회를 했다고 한다.

괴통은 한나라당 건국 이전 제나라의 언론가로서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두고 다툴 때, 한신에게 독립을 권했던 사나이다.

만일 당시 한신이 괴통을 말을 받아들여 독립했더라면, 유방에게 토사구팽당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비록 중국 천하통일을 도모할 수 없었더라도 유방과 항우 한신 세 사람이 천하를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한나라당이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정권을 틀어쥐게 된 과정을 보면서 필자는 한신의 비참한 말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이 당시 시대상황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 문제아였던 유방이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한신의 도움 때문이었듯이, 도덕성 문제로 인해 논란이 많았던 이명박 당선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도움 때문이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당시 언론인이었던 필자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독립을 권고했었다.

마치 괴통이 한신에게 독립을 권고했던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한신이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처럼 박 전 대표 역시 필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신이 토사구팽 당하는 것처럼 박 전 대표 역시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다만 믿는 것은 한신이 유방의 경계와 감시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반면, 박 전 대표는 이미 이명박 측근들의 술수를 파악하고 그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신이 당하던 것처럼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최근 총선기획단 발족을 놓고 밀실공천 의혹을 제기하는 등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좀처럼 노여움을 보이지 않는 박 전대표가 최근 “해야 할 말은 안하고 안해야 할 말만 한다. 무슨 전략적 공천을 하기 위해 최대한 시기를 늦춘다거나 물갈이를 한다거나, 도대체 누가 누굴 향해 물갈이한다는 것입니까?”라고 격한 발언을 쏟아낸 것도 자신을 경계하는 속내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신은 유방의 측근인 여후와 소하의 모략을 눈치 채지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박전 대표는 이명박 당선자 측근들의 모략을 훤히 꿰뚫고 있어 그렇게 쉽사리 팽을 당할 거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가 여전히 불안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지금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일으킨 한신의 모습과 이명박 당선자를 도와 한나라당이 집권하도록 만들어 준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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