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이제는 나서라’며 그에게 커다란 액션을 주문하는 목소리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박 전 대표의 과거 측근이었던 김재원 전 의원마저 최근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박근혜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며 등을 떠밀고 있다.
일견(一見)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박 전 대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여당 소속이기 때문에 정부의 잘못에 대해 침묵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거니와 정부의 어려움을 마냥 외면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실제 쇠고기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당겨졌을 때에 박 전 대표는 “국민이 요구하는 재협상을 하라”고 강하게 정부를 압박하는가하면, 한반도대운하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반대 목소리를 높였었다.
반면 박 대표는 이미 인수위 시절에도 이 대통령의 요구로 중국특사를 다녀올 만큼 협조할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협조해 왔다.
당시 측근들 중 몇몇은 완강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표는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다”고 측근들은 설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박 전 대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무 것도 없다.
한나라당 내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그저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 참여 할 수 있는 자격이 고작이다.
청와대나 한나라당 모두가 박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청와대는 박 전 대표가 뜨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북특사설’이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게 의아하지 않는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북특사설’을 흘렸다.
이것은 청와대와 사전교감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더구나 박 대표는 관록 있는 정치인이다.
따라서 그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조차 구별 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자마자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당시 (7월23일 오후 1시30분)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희태 대표가 최근 꼬인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북측의 명백한 사과와 향후 조치를 받아내기 위해 ‘한나라당에 계신 훌륭한 정치인’을 대북특사로 파견하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때 현장에 있던 한 기자가 “유력한 대북특사로 박근혜 전 대표를 언급하는 것이냐”고 묻자 차 대변인은 “기자들이 알아서 생각하라”며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자 같은 날 오후 5시30분 경에 이명박 대통령이 예고 없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머물고 있는 춘추관을 찾았고, 여기에서 이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북한도 (특사를) 받기 힘들지 않겠느냐”며 특사 파견을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다음 날 오전 박희태 대표가 완전히 발을 뺐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 다음날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북특사 문제가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데 대해 “다 끝난 일 아니냐. 내가 따로 말할 게 없다”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발언에는 당연히 불쾌감이 묻어났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같은 해프닝은 단순한 당.청 엇박자가 아니다.
청와대는, 아니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의 영웅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대북특사설을 무위로 돌려버렸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예고 없이 춘추관을 방문해 본인이 직접 나서 ‘박근혜는 안 된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등을 떠밀며 “이제는 나서라”고 주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정도가 아니다.
마땅히 할 역할도 주어지지 않은 마당에 무슨 일을 하라는 것인가?
지금 주어진 역할은 연석회의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전념하는 것뿐이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나저나 꽉 막힌 남북대화의 통로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인 박근혜 전 대표의 대북특사설이 한나라를 이끄는 정치지도자의 사적 감정에 의해 무위로 끝난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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