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침묵의 정치’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09-16 17: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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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사기> ‘회음후열전’에 천하의 영웅 한신이 철부지 같은 젊은이의 바지가랑 밑으로 기어간 일화가 있다.

한신이 회음 읍내를 지나가고 있을 때, 읍내 푸줏간의 한 청년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봐, 넌 덩치는 큼직하고 칼까지 차고 다니지만 실상 겁이 많은 녀석일 거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거든 어디 그 칼로 나를 질러 보아라. 만일 그런 용기가 없거든 내 바지가랑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야 한다.”

순간 한신은 난처했다. 밑도 끝도 없이 시비를 걸고 나선 청년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땅바닥에 엎드려 그 철부지 청년의 가랑이 밑을 슬슬 기어 나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군중들은 한신에 대해 “비겁자”라고 손가락질 하며 비웃었다.

뒷날 한신이 초나라 왕이 되어 돌아왔을 때, 그 철부지 청년을 불러 수도경비관에 해당하는 벼슬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사다. 그 때 나를 모욕했을 때, 내가 어찌 죽일 수 없었겠는가. 단지 죽일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참았을 뿐이다.”

승상 소하는 이런 한신을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고 칭했다.

이는 ‘나라에 둘도 없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실제 소하는 유방에게 “천하를 놓고 겨룰 생각이시면, 한신을 빼고는 상의할 사람이 없다”며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을 모욕하는 일은 쉽지만, 그 모욕을 참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신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을 참아내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모든 사람에게 보일 수 있었다.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친박(親朴)이 도마 위에 올랐다.

추석 이전에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려던 한나라당의 계획이 친박 측 예결위원들의 불참으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고의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문책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심지어 친박-친이 갈등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친이 진영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물론 그 화살은 단순히 친박 의원들만 겨냥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박 전 대표로서는 상당히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요즘 조용한 행보를 취하고 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통외통위 등 요란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궂은 일만 많은 보건복지위를 선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지난 15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나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상임위 첫 업무현황보고에 들어간 감회를 전하며 “우리의 기초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상임위에서 매년 몇 천억원씩 발생하는 정부의 의료급여 미지급금 문제와 식품안전관리를 위한 투명성 문제, 국민연금 문제를 다뤘다”며 “(정부가) 답변대로 국민에게 지불할 것을 연체하지 않고 현재의 불투명한 식품안전관리가 투명하게 공개되는지는 계속 확인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짐했다.

물론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가는 호의적일 수밖에 없다.

한 네티즌은 “박 전 대표님의 세심한 배려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더 나아지는 복지가 되리라 확신합니다”라고 기대를 나타냈고, 또 다른 네티즌 역시 “보건복지가족위원에서도 당신의 활동을 기대합니다”라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그의 활동을 순수하게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으로 인정하고, 그래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시선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런 활동을 대권행보로 못박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특히 추경예산안이 자신들의 뜻대로 추석 이전에 처리되지 못한 것을 두고 ‘친박 조직적 방해’로 몰아붙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 전 대표는 많은 것을 인내하고 참아 왔다.

자신들의 측근들이 공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잣대에 의해 줄줄이 낙천의 고배를 마시는 현상을 인내하고 참아왔으며, 총리설이나 북한 특사설이 불거져 나올 때도 그랬다.

이번사태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는 언제나 그랬듯이 또 인내하며 침묵으로 일관할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말 없는 박근혜 전 대표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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