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법부 너마저...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9-02-24 13: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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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 하 승 “정말 저 뉴스가 사실일까?”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지난 23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를 시청하던 국민들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처럼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믿었던 사법부가 국민의 편이 아니라 공안당국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뉴스를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공안당국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국가라면, 미래도 희망도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

한마디로 절망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바로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작년 7월 서울 중앙 지방 법원에서 양심적인 평판사들이 집단 반발을 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촛불 집회 사건을 특정 보수성향의 판사에게 몰아줬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7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단독 재판부 평판사 13명 전원이 긴급 회동했다.

당시 기소된 주요 촛불 사건 5건이 모두 단독 재판부 부장판사 한 명에게만 배당된 게 문제였다.

그동안 법원의 관행대로라면 집회 사건은 일반 사건으로 분류해 기계식 추첨으로 형사단독 재판부에 무작위로 배당하는 게 맞다.

그런데 바로 이 관행을 어긴 것이다.

이 같은 판사의 집단 반발은 역사상 흔한 일이 아니다.

양심적인 젊은 판사들은 그만큼 이 문제를 심각하게 봤다는 뜻이다.

실제 사건 배당을 예의주시하던 단독 판사들은 5번째 사건마저 같은 재판부에 배당되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봤다""고 입을 모았다.

즉 이들 양심판사들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재판부가 공안당국의 뒤처리 역할을 맡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법부도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사법부가 공안당국의 똘마니 노릇을 한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얼마나 꼴불견인가.

결국 당시 신영철 지방법원장은 이들 양심판사들을 만난 뒤 주요촛불사건 배당 방식을 무작위추첨으로 바꾸는 등 조기수습책 마련에 나섰다.

그래서 6번째 주요 사건인 광우병대책회의 안진걸 팀장 사건은 형사 7단독 박재영 판사에게 돌아갔다.

물론 박 판사는 그동안 5건의 재판을 담당한 특정 판사와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그는 안 팀장 측이 낸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받아들이고 보석을 허가해 석방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게 이명박 대통령의 눈밖에 난 것 같다.

그 이후 박 판사는 ""더 가진 사람에게 더 주려는 이명박 대통령과 덜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나의 평소 생각이 맞지 않아 더 이상 공직에 있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지금과 같은 정부의 모습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듯해서 공직을 떠나기로 했다”는 말을 남기고 지난 1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사법부의 양심판사 한 사람이 옷을 벗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그가 스스로 법복을 벗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지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조.중.동은 물론 어쩌면 기꺼이 공안당국의 개가 되더라도 출세하고 싶다는 사법부 어느 고위층의 욕심이 그를 압박했는지도 모른다.

실제 당시 <조선일보>가 기사와 사설을 통해 “재판장이 피고인을 두둔하고 재범을 방조했다”거나 “박 판사는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비판한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정말 걱정이다.

이렇게 양심판사들이 하나 둘 법복을 벗어버리면, ‘공안당국의 개’가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는 말이다.

설사 경찰과 검찰이 공안당국의 하수인이 되더라도 사법부만큼은 끝까지 이 시대의 양심으로 남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나저나 촛불시위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모두 몰아주고, 양심판사들의 목소리를 잠재운 유능한(?) 신영철 당시 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영전됐다는 소식이 왜 이리 우울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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