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마담 대통령제’ 꿈도 꾸지 마라

고하승 / / 기사승인 : 2009-05-25 12: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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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걱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사실상 내각제로의 개헌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 그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각 언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은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비극”이라는 보도를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특히 친이(親李, 친 이명박) 언론인 조선일보는 지난 24일 사설에서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이 이번 비극의 원인이라며 제도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조선은 "대한민국 대통령 권력은 제동 장치가 전혀 없다는 근본적 결함을 갖고 있으며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에게 인사를 포함한 절대 권력이 무한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와 국회, 학계와 시민·사회 단체, 국민 모두가 참여해 대한민국의 부패 특히 그 가운데서도 대통령 부패에 관한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 ‘내각제’라는 말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대통령제를 ‘사실상의 내각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상당수 일본 언론들마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한국 역대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연루된 금품 부정사건이 끊이지 않는 배경으로 권력집중의 대통령제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나섰다.

실제 <마이니치신문>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은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2000억원 이상의 불법 비자금과 반란죄 등으로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도 자식들이 금품수수로 검찰에 체포된 사실 등 역대 한국 대통령의 ‘수난사’를 도표와 함께 자세히 전했다.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은근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 아래 사리사욕을 꾀하는 세력이 지연·혈연을 이용해 대통령 주변에 접근하고 가족과 측근들의 돈에 얽힌 추태가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돼왔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대통령에 큰 권력이 집중되고 가족들도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이권을 좇는 세력과의 유착을 낳기 쉽다”고 지적했고, <아사히신문>도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대가를 기대하며 거액의 돈을 바치는 ‘악순환’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내각제로의 개헌을 꿈꾸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미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지난 4월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와 권력분점형 정부 형태 등 2가지의 개헌연구 잠정안을 마련한 상태다.

자문위 첫째 안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채택할 경우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과 부통령제 도입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한다는 것이고, 둘째 안은 국민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이 비상대권과 외교권을 갖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는 내치 통할권을 갖는 한국형 권력 분점형 정부형태다.

그런데 대통령제의 폐해를 방지하자는 명분이라면, 첫째 안보다 둘째 안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첫째 안은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장관을 겸직할 수 없는 반면 둘째 안은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당연히 자신들에게 둘째 안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다.

결국 첫째 안은 둘째 안을 성사시키기 위한 들러리 안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안의 핵심은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허수아비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타깃은 정확하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일 것이다.

즉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그를 외교에나 나서는 ‘얼굴마담’ 대통령으로 격하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노 전 대통령은 이런 명분을 만들어 내기 위한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불과 1년여 전에 임기를 마친 상태여서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고 또 엇갈리지만, 그가 정치와 돈의 오랜 부패 고리를 끊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도 ‘측근과 가족의 비리’라는 암초를 피해 가지는 못했지만, 재임 5년 간 정치와 재벌 기업과의 부패 고리는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단절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측근들의 비리가 들춰졌지만 과거 정권에 비해 규모도 작았다.

따라서 ‘대통령제 폐해’를 명분으로 ‘허수아비 대통령제’로 개헌을 추진하려던 사람들에게는 그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지면서, 그를 압박했을 가능성이 높다.

허나 이번에 드러났듯이 대통령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느냐 하는 게 더 큰 문제다. 따라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사실상 내각제로의 개헌이 아니라,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방향으로 개헌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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