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푸릅니다.
수확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상실의 계절을 삽니다.
분노의 계절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많은 것을 잃은 채 입을 닫아야 합니다.
닫지 않으면 쫓겨나야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은 당신과 MBC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분노를 알고 있습니다.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며 한계점에 도달한 인내임을 압니다.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행복한 방송인에서 이제 국민이 보호해야 할 핍박받는 방송인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언론의 사명을 당신 앞에서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망발입니다.
평생을 언론현장에서 살았고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살아온 당신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똑똑히 보고 체험했고 언론현장에서 말할 수 없는 굴욕을 감내해 온 기자로서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신이기에 지금 온갖 모멸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모든 언론사가 그랬듯이 MBC도 독재 시절은 치욕의 세월이었습니다.
독재의 비위를 거스르면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독재 치하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고통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할 말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해야만 했습니다.
언론자유는 헌법에만 있었습니다.
언론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언론인들의 절실한 갈망은 언론자유 쟁취를 위한 가열찬 투쟁을 불러왔고 MBC는 늘 앞장에 섰습니다.
기억합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사장이 MBC 문전에서 쫓겨나는 딱한 모습을 온 국민이 보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제 다시는 공정방송을 옥죄는 만행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구나 믿었습니다.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철부지는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합법을 가장한 교활한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정연주 사장이 어떻게 KBS를 떠났는지 잘 알 것입니다. KBS 신태섭 이사가 당한 개가 다 웃을 일을 목격했습니다.
이유는 마음에 안 든다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울어! 하면 울고, 웃어! 하면 웃고, 물어! 하면 개처럼 물고, 죽여! 하면 죽이는, 야만을 거부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한 때 언론자유의 꽃이 아름답게 만개했던 KBS, MBC, YTN.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온몸에 돋습니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언론특보를 지낸 인물이 YTN 사장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KBS 정연주 사장이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쫓겨 난 이유인 배임죄는 무죄가 됐습니다.
엄 사장님,
PD수첩 잘 아시죠.
사회에 온갖 부조리를 파헤쳐 고발함으로써 PD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 준 고발 프로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아팠습니다. 미친 쇠고기(광우병)방송으로 혼쭐이 났습니다.
엄 사장님,
그런 방송 못 하도록 했어야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우병 방송’을 막았어야죠.
PD들을 중징계했어야죠. 프로개편 때 손을 봤어야죠.
손석희의 ‘시선집중’ 과 ‘100분 토론’ 없애야죠.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도 하차시켰어야죠. 그걸 못한 결과가 뭔가요. 쫓겨나는 겁니다.
지난 3일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연출상을 받은 MBC ‘무한도전’ PD 김태호가 수상소감 한마디를 했습니다. "밖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최문순 전 MBC 사장님 그리고 엄기영 사장님, 힘 내십시오."
엄 사장께서는 시상식에 나가기 전에 불러다가 주의를 줬어야죠. 쓸데없는 소리들 말라고 말입니다. 미리 알아서 대처해야 유능한 사장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그런 거 안 하고 어떻게 사장 계속하려고 했나요. 딱합니다.
엄 사장님, 아무래도 내가 늦더위를 먹었나 봅니다.
횡설수설이 도를 넘었죠. 미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죠. 정연주 KBS 전 사장이 엄 사장한테 공개편지를 썼더군요. 그 편지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정연주 사장이 오마이뉴스에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라는 글을 썼습니다. 자신이 지난해 해임되기까지의 고통과 수모를 견뎌낸 경험을 엄 사장에게 충고와 조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입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엄 사장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 가슴 저미게 느낄 고뇌와 고통, 북풍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외로움을 제가 지난 해 비슷한 처지에서 절실하게 경험한 터여서 그 고뇌와 고통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설명했습니다.
정 전 사장은 엄 사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힘들고, 온갖 모욕과 비난과 인신공격이 당신에게 가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그것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이 바로 MBC 사장이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역사 앞에서 감당해야 하는 책무"라며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역사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엄 사장님?
정연주 사장의 말이 가슴에 절절하게 전달되시죠. 당사자도 아닌 내 가슴을 이렇게 꽝꽝 울릴 때 엄사장께서야 오죽하겠습니까. 아마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시류에 편승해 부평초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그런 인간들처럼 살 생각만 했다면 세속의 영달은 엄 사장님에게 넘쳐흐릅니다.
선거철만 되면 이 당 저 당에서 저마다 모셔 갈려고 아우성친 사실을 다 압니다.
그러나 엄 사장님은 언론인의 길을 고수했습니다.
당신은 초년 기자 시절, 취재 중에 헬기 사고로 생사를 헤맸습니다.
최장수 인기 앵커로 만인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방송인의 길에서 MBC는 엄 사장님의 고향과 같습니다.
누구보다도 MBC를 사랑합니다. 그런 MBC를 떠나라고 합니다.
그냥 떠나라는 것이 아니고 쫓아내려고 합니다.
부당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이 없는데도 책임을 지라면 그건 부당합니다. 국민들은 부당하다고 합니다.
언론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MBC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MBC와 엄 사장님을 지키겠다고 아우성입니다.
한국 방송사에서 MBC가 걸어 온 형극의 길과 언론민주화 투쟁의 발자취는 빛납니다. 빛나는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권력자에게는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쫓아냅니까. KBS의 정연주 전 사장의 말대로 포클레인으로 집어 올려 내치기 전에는 꿈쩍도 해서는 안 됩니다. MBC는 KBS와 다릅니다.
MBC는 엄 사장님을 지켜 줄 것입니다. 방문진의 김우룡과 뉴 라이트가 무슨 억지를 쓸지 모르지만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것은 그냥 속담일 뿐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언론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못된 생각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그들 사고에 대못을 박아야 합니다.
방송대통령이라는 최시중, 연극인 장관인 유인촌, 교수님이신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다시는 쓸데없는 꿈 꾸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엄 사장님, 정연주 KBS 전 사장이 엄 사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다시 씁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당신의 모습이나 인품이 신사여서, 이런저런 모멸에 '에이 더러운 것, 나쁜 사람들, 그냥 떠나자', 그렇게 할지도 몰라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던지고 나면, 후배들은 어찌 되며, 방송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는 MBC는 어떻게 되며,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최소한 저들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폭로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당신을 강제로 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티셔야 합니다.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많은 벗들이 당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리하리라 확신합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씩 웃으면서, 그리고 한국 방송 앵커의 상징적 존재로서 자존심을 지키면서 말이지요.”
엄 사장님, 당신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방송인이기에 행복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 행복을 뺏어 갈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국민 모두의 행복이며 민주언론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의 것입니다.
국민과 MBC가 당신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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