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09-24 17: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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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 되었고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으나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회고록이 '성공과 좌절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고 한다.

명색이 5년 동안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을 통치했던 그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국회의원, 변호사, 장관 등 화려한 이력을 거친 그조차 뛰어넘지 못한 현실의 한계에 대한 소회를 육성의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어쩌면 그 자신의 꿈을 참담하게 몰아세우던 독한 현실에 대한 깊은 회한의 흔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미완이지만 노 전대통령이 자살하기 며칠 전까지의 기록 등이 담겨 있어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이 글을 쓴다)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때문에 마당에 나가지 못하고 안방에서 발걸음을 세며 왔다갔다 하는 자신의 모습을 영화 빠삐용에 빗댄 그의 기록 한 쪽이 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려 했던 게 인생의 큰 오류였다며 오히려 역사를 움직이려면 대통령보다 돈과 언론 등 권력 수단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면서, 특히 정치를 안 했으면 꽤 괜찮은 지식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한 대목에서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했던 그의 마지막 심정이 헤아려지는 것 같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하는 입장인 내가 그의 자조섞인 고백서 앞에서 이토록 마음이 쓰이고 있는 현상이 상당히 아이러니컬하다.

자본과 언론 그리고 검찰 권력은 일국의 대통령을 좌절시킨 것만으로도 절대 권력의 실체로 공인받은 셈이다.

특히 자본과 언론 권력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축이라고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것들의 막강한 위력을 그동안 숱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괜한 말이 아니다.

오죽하면 ‘돈이 있으면 귀신도 돌아눕게 할 수 있고 돌아섰던 귀신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현재 대한민국 재벌가를 이루는 주요 멤버인 삼성, 현대, 엘지 거기다가 SK나 두산 등의 재벌 기업이 누리는 권력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다.

그들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만큼이나 그들이 향유하는 사회적 특권 역시 강하고 질기다.

언론도 재벌 못지 않게 튼실한 권력을 향유하는 집단이다.

언론사주의 권력이 한때 밤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대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황이고 보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노 전대통령이 참여정부 5년 내내 '사회의 흉기'로 지목한 보수 언론들과 전쟁을 벌인 사실은 알려진 바대로다.

결국 스스로 백기를 들어 대통령을 이긴 언론이라는 훈장을 달아준 결과로 끝내긴 했지만 그의 외로운 고군분투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관련 학자들의 진단은 실제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마당이다.

정제되지 않는 법 집행은 그야말로 살인무기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정의롭지 못한 공권력의 폐해가 개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독성이 될 수 있는 건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현직 대법관의 무죄판단조차 정치권력 구도에 함몰된 법 질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을 겪었고 멀쩡한 사람도 졸지에 범죄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길의 위협도 당해봤다.

저승사자처럼 닦달해대던 공권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지는가에 대한 체험도 그 때 해봤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는 고해성사와 함께 악수를 청해왔다.

그 순간의 허망함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돌아보니 나 역시 기득권을 누리며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는 가해자였다.

정당 공천심사위원장 또는 심사위원으로 선거 후보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악역이었다는 걸 알겠다.

여러가지 선거 출마를 위해 평생을 고심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뜻을 접는 중심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되지 못한 숱한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그 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학교의 이사장, 총장으로서 교직원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기득권'이었다.

물론 사안마다 정성껏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고 공정하게 처리하고자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선택되지 못한 다수의 열패감을 섬세히 위로했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내게 주어진 결정권이 얼마나 비정한 임무였는지 새삼 알겠다.

그러고 보니 과연 지금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나를 향한 돌팔매가 될지도 모르겠다.

권력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내가 이런 상실감을 경험할 정도라면 그야말로 돈없고 의지할 권력 하나 없는 힘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멍드는 순간이 많았을까 싶다.

돈이나 언론, 그리고 공권력.

결국은 그 힘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지차이의 결과를 초래하게 돼 있다.

칼 한자루라도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의료기구도 되고 살인무기도 된다.

아무리 큰 권력이라도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식이어서는 결코 안된다.

사람들의 원성을 귀담아 듣고 보조를 맞춰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차피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거나 그저 소수의 불평 정도로 치부해선 안된다.

큰 댐에는 반드시 구멍이 나 있다.

댐의 구멍은 수압에 밀려 댐이 무너지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마찬가지로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멍은 구명줄에 다름 아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기본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자는 얘기다.

회고록...풍운을 몰고 왔다 사라져 간 한 인간의 실패와 좌절의 기록을 통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던 율곡 선생의 피끓는 외침을 음미해 보는 것도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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