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수뇌부가 당장 이번 주에 고위 당·정·청 회의를 비롯한 연쇄 회동을 갖고 세종시 문제를 조율할 예정인 가운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치신뢰’ 문제를 들어 ‘원안 고수’ 입장을 철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착수할 예정이어서 여야간 극한 대립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즉 세종시 문제가 향후 국정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란 뜻이다.
더구나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최대 ‘복병’이 될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가 맞물려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상황이다.
일단 4대강 사업과 관련, 2012년까지 본사업비만 무려 22조2000억원이 소요되고, 당장 내년도 사업비로 6조7000억원(정부 예산 3조5000억원+수자원공사 부담분 3조2000억원)을 편성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따라서 민주당 등 야당은 4대강 관련 예산을 예년 하천정비 평균사업 예산 수준인 1조원 이내로 대폭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무조건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 예산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나라당 예결위 간사인 김광림 의원은 8일 “정부 제출 예산안은 기본적으로 당정협의를 거쳐 나온 것인 만큼 위법·부당사항이 아닌 한 원안을 지키는 게 원칙”이라며 4대강 예산에 대한 수정 불가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가 참 웃긴다.
세종시 문제는 이미 모든 법률적 절차가 끝난 것임에도 수정을 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4대강 사업은 단지 당정협의를 거쳤다는 이유로 ‘원안을 지키는 게 원칙’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가관이다.
더구나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4대강 예산이 적정하게 집행되는지 심의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자료조차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는 마당이다.
특히 정부가 국회 예산심의에 앞서 4대강 턴키공사를 불법 발주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4대강 사업은 ‘원안을 지키는 게 원칙’이고, 세종시 건설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원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대체 한나라당의 원칙은 무엇인가.
진정 국가백년대계를 위해서라면, 환경파괴 위험이 있는 4대강 사업을 보다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4대강 사업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원칙이 ‘국가백년대계’에 있지 않음은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민주적 절차’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종시 수정 문제가 대두된 것은 당내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운찬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이 말하는 ‘원칙’이란 ‘이명박 대통령 의중’에 불과한 셈이다.
실제 4대강 사업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은 ‘무조건 고(GO)’다. 반면 세종시에 대해서는 ‘무조건 노(NO)’다.
물론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정도 아니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결정도 아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이 그러하니 그걸 따르는 게 한나라당의 ‘원칙’인 것 같다.
세상에 이처럼 한심한 정당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한나라당이 이번주 중 정몽준 대표 직속으로 세종시 태스크포스 형태의 세종시 논의 기구를 공식 발족시킬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실제 당 핵심 당직자는 “이번 주 중 당내 세종시 논의기구를 구성할 계획이며, 4선의 정의화 의원을 팀장으로, 10여명의 원내외 인사로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당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조직을 구성하겠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과연 한나라당은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 국민을 위한 정당인지,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는 ‘허수아비 정당’인지 궁금하다.
지금 국민들은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한나라당의 당론 결정 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가 여기에서 결정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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