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안상수의 ‘적반하장’

고하승 / / 기사승인 : 2009-12-09 15: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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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시민일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9일 “국회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결국 ‘국회 무용론’이 나오고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날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함께 국회 선진화 방안에 대해 노력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처음에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바로 전날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날치기를 한 자신들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뉘우치는 소린 줄 알았다.

실제 8일 오후 내년도 국토해양부 예산안을 심의하던 국회 국토해양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소속 이병석 위원장이 갑자기 3조5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의사일정 108항)을 기습 상정하고 말았다.

물론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의 추가 질의가 이어지고 있었고, 토론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위원장이 갑자기 “의사일정 108항부터 111항까지는 토론 종결하고 의결하고자 합니다. 이의 있습니까?”라고 물은 뒤 ‘이의 있다’는 야당 의원들의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방망이를 세차게 두드렸다.

한마디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했다.

이날 방송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이의 있습니다”라고 하는 야당 의원들의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 유독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 포항 동지상고 출신인 이병석 위원장만 이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감히(?)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는 4대강 예산을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소리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오만함 때문인가?

이날 국민들은 4대강 예산 날치기 과정에서 법과 의회민주주의를 파탄 내는 진범이 누구인가를 똑똑히 지켜봤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국회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결국 ‘국회 무용론’이 나오고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으니, 이를 자성(自省)의 소리로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안 원내대표는 “오늘로 100일간의 정기국회가 끝나는데 야당의 습관적인 발목잡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로 결국 부끄럽게 끝이 났다”면서 “국민 앞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야당이 4대강 사업 제지를 목적으로 예산태업을 했고 국토해양위(예산 기습처리)를 빌미로 본회의마저 무산시켜 국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었다”고 야당을 탓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는 “한나라당은 고질적인 나쁜 관행을 타파하고 선진국회로 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참 가관이다. 우리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는데 그가 꼭 그 모양이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말처럼 국회에 남아 있는 고질적인 나쁜 관행을 타파하려면 먼저 ‘MB식 날치기’부터 추방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한나라당이 예산을 날치기한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4대강 사업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은 4대강 사업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점이 좋은지 정확하게 알기를 원한다. 특히 낙동강의 평균수심이 8m가 넘는 반면, 한강 3.3m 금강 3.7m 등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운하와 연계됐다는 국민적 의혹을 불식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따라서 정부와 여당이 자신 있다면, 이같은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또 4대강 사업을 국민에게 널리 홍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이런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날치기를 하고 말았다.

얼마나 자신 없으면, 그런 짓을 했겠는가마는 이건 정말 아니다.

4대강 사업도 그렇고, 세종시 문제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은 왜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으면서 자꾸만 판을 크게 벌리는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그런데 보다 더 답답한 것은 바로 그런 이 대통령의 독선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날치기를 하거나 거수기 노릇으로 그를 도와주는 한심한 여당 의원들이다.

심지어 전여옥 의원 같은 경우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을 한 MB-대통령다운, 지도자다운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며 노골적인 이비어천가(李飛御天歌)를 올려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묻겠다. 당신은 국민의 소리, 아니면 최소한 자신에 대한 양심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가?

단언컨대 전날 국회에서 자행된 거대 여당의 횡포, 즉 국토해양위의 날치기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여당 의원이 단 한명도 없다면, 한나라당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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