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는 왜 아바타를 버렸나?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3-11 12: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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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문화평론가)

13년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라고 외쳤던 제임스 카메론.

당시 <타이타닉>의 흥행기록은 2010년 <아바타>를 통해 깨어졌다.

이 때문에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세상의 왕이려면 적어도 감독상과 작품상 그리고 각본상 등은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 <아바타>는 하나도 수상을 하지 못하고 시각효과상, 미술상, 촬영상등 3개부문만 수상했다.

화제가 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러했다. 하나는 제임스 카메론의 전 아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승자와 패자의 간점에서 보았을 때 승자는 전 아내였고, 전 남편이었다.

다른 하나는 여성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점은 82년 동안 금기의 장벽으로 여겨졌던 점이 깨어진 것이라 많은 화제를 불러보았다.

작품 자체를 본다면 6000억원 짜리 영화를 125억 영화가 격파했다.

13년 이상을 고민한 영화를 몇 년 만에 만든 영화가 이겨버렸다.

사실 국내에서도 그러했지만 영화 아바타에 대한 평가는 작품자체 그러니까 서사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식상하고도 평범한 이야기 구조이며, 기시감이 심하게 든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다만, 영상적인 기법에서는 인정을 받았다.

사실 이번 두 영화의 대결은 상업흥행 영화와 작품성 있는 예술영화의 승부로 프레임이 구축되는 모양이었다. 이같은 점은 아카데미가 스스로 내세우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아바타>와 <허트로커>를 상업영화와 예술작품영화로 나누어 대조 비교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들기도 한다. <아바타>는 일단 미국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영화였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인 주주이익 우선주의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러한 제도가 결국 지구를 멸망시키고 다른 행성까지도 착취하게 만들 것이라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점은 인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심리를 통해 일부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울증을 일으키고 자살충동으로 이어지게 했다.

자연에 대한 회귀심리와 동경은 현실도피라는 행태로 이어지는 듯해 종교계에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자연숭배주의는 또다른 현실 왜곡이라고 비판한 교황청의 행태를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 <아바타>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화두를 고민했다는 점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긍정의 역할이 있었다.

더구나 3D 영상기법이 대중적으로 잘 수용되도록 각본은 언캐니 현상을 극복하면서 생태학적 위기 상황에서 대중의 향수를 적극 반영해냈다.

이 가운데 감독의 역량은 중요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허트로커>를 향한 아카데미의 선택은 고루했다.

파병 미군을 다룬 <허트로커>는 다른 비슷한 소재의 영화와 달리 스릴러 방식으로 폭발물처리반 병사들의 일상과 심리를 다루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폭발물 처리반의 애환과 고통, 갈등을 사실감있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화두는 <아바타>와 대척점에 있다. 평화와 환경이라는 화두보다는 전쟁에 참여한 개인들의 고민과 삶의 문제에 천착한다.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이나 반평화적인 전략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허트로커>는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스토리라인과 다큐적인 기법이 오락 스릴러 방식과 잘 어울리고 있다. 하지만 주제의식은 오락영화인 <아바타>의 긍정적인 점 보다도 못미친다.

시선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적어도 <아바타>는 객관화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개인적인 차원의 성찰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반성과 성찰을 추구했다.

더구나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있었다.

하지만 <허트로커>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한 기술과 묘사만이 존재할 뿐, 전지구적 차원의 현실적 반성과 미래지향적인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미군 병사의 이라크 회귀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아바타>가 미국을 불편하게 했다면, <허트로커>는 미국을 합리화해 주었다.

만약 제임스 카메론이 <허트로커>를 만들었다면, 대중 상업영화이기는 하지만 묵직한 주제의식은 더 부가했을 것이다. 최소한 막판에 근본적인 성찰에 대한 팁은 담았을 것이다.

아카데미는 왜 <아바타>를 버리고 <허트로커>를 선택했을까?

많은 학자들은 정치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을 두둔했지만, 미국의 경제위기 상황은 그것의 극복을 위해 내부 구성원의 단합과 일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했다.

어쨌든 비록 용병이지만 병사들을 배반하고 나비족을 위해 총을 드는 제이크 설리보다는 <허트로커>의 폭발물처리반처럼 자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병사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더 소중한 시점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아바타>처럼 먼 미래를 생각하기 이전에 지금 당장의 문제-위기에 더 천착하고 있는 미국의 대중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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