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 스님과 정치인 간에 흥미로운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서로 상대를 향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독자 여러분들은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답은 들으나 마나 빤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 과정을 한번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봉은사 주지 진명스님은 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에서 가진 일요법회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13일 오전 7시30분 프라자호텔 식당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놔둬서 되겠느냐'라고 한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히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 연장선에서 봉은사가 조계종의 직영사찰로 전환됐다는 것.
이 같은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자리에 배석했던 김영국 거사를 통해 명진 스님에게 전달됐다.
명진 스님은 22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내 말이 근거 없고 허황된 얘기라면 내 발로 봉은사를 나가 승적부에서 이름을 지울 것"이라며 "만일 안상수 대표가 이런 야합이나 밀통을 했다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배수진을 쳤다.
만일 이같은 진명스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권력이 인간 양심의 최후 보루인 종교계에까지 간섭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안 원내대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안 원내대표도 지난해 11월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란 것은 현장에서 녹취하지 않는 한 부정하면 발언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지만, 회동 사실은 무수히 많은 목격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만나기는 만났으되, 결코 ‘좌파’ 운운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럼 안상수 원내대표는 어떤 인물인가.
평소 그는 ‘좌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실제 그는 최근 "좌파교육 때문에 법치주의가 무너져 아동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는 황당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지난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교육국민연합’ 창립대회 축사에서 "10년간의 좌파정권 기간 동안에 편향된 교육이 이루어졌다"며 "이제는 그 잘못된 편향된 교육을 정상화된 교육으로 바꾸어야 나가야 한다"고 언제나 그렇듯 '좌파 타령'을 늘어놓더니만, "이런 잘못된 교육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많은 세력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흉악범죄들,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김길태 같은 아동 성폭력범이 나온 것도 좌파교육의 산물이라는 황당한 주장이다.
이 발언의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고, 결국 안 원내대표는 코너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안 원내대표는 “발언의 상당부분을 법치주의 확립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극악무도한 흉악범죄,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직 이 땅에 정착되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발언의 취지를 무시하고, 마치 좌파교육 때문에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고 발언한 것처럼 왜곡편집 보도했습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누가보아도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은 왜곡편집에 따른 오해가 아님이 분명했다. 즉 안상수 원내대표가 거짓말을 한 셈이다.
물론 그 때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이번에도 거짓말을 했을 것이란 추측은 너무 억울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치기 소년 이야기도 있지 않는가.
평소 입버릇처럼 거짓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은 어쩌다 한 번 진실을 이야기해도 주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
하물며 아무리 보아도 명명백백한 사실을 아니라고 우긴다면, 양치기소년의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그나저나 정말 큰일이다.
교육계에 ‘좌파’의 덫을 씌워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길들이기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종교계마저 ‘좌파’라는 허물을 뒤집어 씌워 마녀사냥 하듯, 비판적 인사들을 솎아내려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찌 될지 암담하다.
대체 귀신은 뭘 먹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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