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MB 재집권’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하는 소리가 아니라 아주 호언장담하는 인사들까지 있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로부터 이같은 보고를 받고 “혹시 ‘정권 재창출’이라는 소리를 잘 못 들은 게 아니냐”하고 반문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MB 재집권’이라는 말이 확실하다는 것.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다.
필자는 지난해 연초부터 최근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나리오’ 가능성을 수차에 걸쳐 언급한 바 있다. 실제 그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이를 비밀에 붙이지 않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권 재창출’이란 같은 정당 소속 후보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재집권’은 현 권력자가 그대로 다음 권력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즉 이 대통령 측근들은 한나라당 소속의 다른 인사가 차기 대통령이 되는 ‘정권 재창출’ 대신, 이명박 대통령이 또 직접 혹은 간접적인 차기 권력자가 되는 ‘재집권’을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물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통해 재집권의 꿈을 꾸고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실제 이 대통령 측근들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고 있다.
특히 대통령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경우를 보자.
그는 최근 국회연설을 통해 지방선거 직후 개헌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생각하는 개헌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실권을 갖는 ‘이원집정부제’다. 실제 안상수 원내대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원집정부제’ 의 장점을 거론한 바 있다.
또 주호영 특임장관은 지난해 말에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 개헌 논의에 대비해 준비하라고 지시했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심지어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에는 아예 직접 한나라당에 개헌을 추진하라고 특명을 하달하기도 했다.
물론 대통령이 어떤 개헌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안상수 원내대표의 행보나 국회의장의 직속기관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최근 국회에 ‘이원집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두개의 안을 동시에 제안하면서, 사실상 이원집정부제를 제1안으로 한 것 등을 볼 때 그 방향이 ‘이원집정부제’임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통해 ‘재집권’을 하겠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즉 국민이 직접 선택한 대통령은 아무 실권도 갖지 못하는 허수아비로 만들고, 대신 국회의원들이 선출한 총리가 사실상의 모든 실권을 갖도록 하자는 것.
이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총리가 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즉 이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차기 실권을 가진 총리가 되는 방식으로 재집권을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설사 자신이 직접 출마하는 모양새가 이상하다면, 특정 대리인을 총리로 지명해 수렴청정(垂簾聽政) 형식의 ‘재집권’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이런 식의 재집권에 자신감을 보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민주당이다.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가 없는 민주당도 내심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만 적당히 설득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인 것 같다.
실제 민주당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원집정부제 혹은 내각제로의 개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떠라서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일방적인 홍보로 국민여론을 호도해 왔듯이, 개헌도 얼마든지 여론왜곡이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안 될 말이다.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정치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하길 원한다. 믿지 못할 국회의원들에게 그런 권한을 위임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국민들로부터 그런 선택권을 빼앗아 가고자 한다면, 그게 여당이든 야당이든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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