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은 지난 2월 공천 개혁의 일환으로 ‘국민공천배심원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후보 공천과정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은 사회 각계 인사들 가운데 30명의 배심위원을 임명하고, 이들로 하여금 당이 전략 공천한 인사를 검증케 하도록 했다.
배심위원 2/3가 부적격한 인물이라고 판단하면 최고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배심원단의 활동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배심원단 2/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재심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배심원단에서 이의를 제기한 전략공천 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당에서 내정한 인물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배심원단이 최근 단 한사람의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에 대해, 그것도 참석 배심원단 27명 가운데 26명이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최고위에 재심의를 요구했으나 배심원들의 목소리는 아예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실제 배심위원들은 지난 11일 경기 용인시장 후보로 내정된 오세동 전 수지구청장에 대해 공천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오 전 구청장은 농지 형질변경 및 재산형성 문제, 직불금 부당 수령 의혹 등이 불거져 도덕성 측면에서도 도저히 공당의 후보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게 배심위원들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배심원단들의 생각일 뿐,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한나라당 최고위가 13일 배심원단의 재심요구를 무시하고, 오세동 용인시장 후보에 대해 최공천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의 이런 결정은 도덕성에 문제가 있든 말든, 니들이 뭔데 감히 제동을 거느냐는 식이다.
배심원단이 여러 사람에 대해 재심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단 한 사람의 후보에 대해, 그것도 만장일치에 가까운 배심원들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이마저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초 국민배심원단은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이번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최우선으로 손꼽은 것이 도덕성이었다.
정병국 사무총장도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파렴치범, 뇌물수수 등 부정부패를 저지른 인물들은 공천신청에서 제외하겠다며 ‘도덕공천’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 총장의 이런 발언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드러난 셈이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선거 때만 되면 항상 ‘국민’을 강조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이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지지도가 민주당 지지도보다 10% 정도나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귀찮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최고위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분명하게 밝히거니와 우리 국민은 결코 ‘껍데기’가 아니다.
이 시대를 이끄는 ‘주인’이자 ‘알맹이’는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이고, 유권자들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6.2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후보를 공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란 뜻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도덕성 문제를 덮어 두고 ‘묻지 마 투표’를 실시한 결과의 참담함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만일 그 사실을 벌써 잊고 있다면, 우리는 국민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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