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무소속 돌풍이냐, 줄투표냐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0-05-30 1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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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6.2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무풍(無風)’이라고 불리는 무소속 돌풍이 한나라당에 의해 조성된 ‘북풍(北風)’이나 민주당이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노풍(盧風)’보다 더욱 거세다.

16개 시.도지사를 뽑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들이 경남과 제주 등 두 곳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가 하면,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도 무소속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서울 중구에서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당에서 공천을 받은 일부 서울시의원 후보나 구의원 후보들이 자신들의 소속 정당 구청장 후보를 외면하고, 무소속 정동일 후보와 동행하고 있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중구는 한나라당 후보나 민주당 후보 등 거대 정당의 후보들이 지역에서 생소한 인물인데 비해, 무소속 정동일 후보는 그 지역에서 구의원과 시의원을 거쳐 구청장까지 지낸 인물로 독자적인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따라서 단 한 표라도 절실한 시의원 후보나 구의원 후보들이 자신들이 속한 정당의 구청장 후보를 외면하고, 그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 <시민일보>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민주당, 무소속 후보가 모두 30%대의 지지율에서 초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소속 후보에 대한 지지는 대체적으로 충성도가 강한 편이어서 같은 지지율이라면, 실제 득표율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은 상식이다.

어쩌면 선거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이 지역 선거 패배에 따른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날지도 모른다. 여야 모두 당협위원장들의 ‘인책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역 구청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양천구는 어떤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소속 추재엽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나라당 자체 여론조사에서는 추 후보가 1위, 한나라당 후보가 2위를 달리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민주당 자체 조사에서는 추 후보가 1위, 민주당 후보가 2위로 나타났다. 즉 어느 정당에서 조사하든 선두가 무소속 추재엽 후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이 지역을 ‘경합 열세’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맹정주 구청장이 출마한 강남구와 정송학 구청장이 출마한 광진구에서도 이들에 의한 ‘무풍’이 강하게 몰아치고 있다. 금천과 영등포에서도 무소속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동안 지방선거에서 이처럼 무소속 후보들이 선전한 사례는 별로 없었다. 지난 2002년 선거와 2006년 선거 모두 한나라당 후보들의 ‘싹쓸이’ 현상이 나타났었다. 민주당 후보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무소속 후보가 설 자리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상하게 무소속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여야 각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기 때문이다.

실제 6ㆍ2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인데도 수도권 지역의 부동층이 무려 20% 가까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의 지난 24일 여론조사에선 부동층이 서울 17.6%였다. CBS와 방송3사의 24∼26일 조사에서는 서울 부동층이 11.6%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여야 모두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부동층은 사실상 투표장에 가지 않는 층이기 때문에 당락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반면, 민주당은 야권 성향의 유권자가 표심을 감추고 있어서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동층은 여야 각 정당의 오만한 공천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무소속 후보들을 주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후보 선택의 기준으로 ‘소속 정당’ 보다는 ‘인물’을 꼽고 있다는 점도 무소속 후보들에게는 힘이 되고 있다.

문제는 ‘줄투표’다.

서울의 경우 유권자들은 서울시장과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교육감, 교육의원 등 8번을 투표해야 하는 데, 일일이 후보들을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해 줄까 하는 점이 문제라는 말이다.

어쩌면 지난 지방선거 때처럼, 시장후보와 똑같은 번호로 구청장 후보와 시의원, 구의원 후보 등을 함께 찍는 '줄투표' 현상이 재연될지도 모른다.

여야 각 정당이 지방선거 후보를 공천하면서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멋대로 공천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줄투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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