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같은 중거리 슛!’, ‘대포알 같은 캐논 슛!’. 이것이 과거 월드컵에서 우리가 자랑스러워했던 골들이다.
멋지긴 멋졌다. 하지만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골문 앞까지 진출하지 못하고 멀리서 ‘뻥’ 차 넣는 슛이었기 때문이다. 요행히 골문 앞에 가면 흥분한 나머지 하늘 위로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골문 앞 혼전 중에 들어가는 골도 있었다. 이것도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 시원시원한 느낌이 없었다. 우리는 그저 죽도록 열심히 뛰다가 ‘뻥’ 차는 것밖에는 못하는 것일까? 어렸을 때 그런 열패감을 많이 느꼈었다.
그 답답함을 ‘뻥’ 뚫어준 것은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의 황선홍 골이었다. 그때 우린 리듬감이 넘치는 조직력과 자신감 넘치고 감각적인 슛을 보았다. 감격이었다. 한국이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니. 그것도 유럽팀을 대상으로!
황선홍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것은 과거 열패감에 찌든 한국인이 아닌 새로운 한국인의 모습을 상징했다.
그 모습은 박태환, 김연아로 이어졌다. 그리고 벤쿠버 올림픽에서 승리한 선수들도 그런 새로운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가득 찬 신인류 한국인. 한 맺히고 응어리진 한국인은 그곳에 없었다.
2002년에 한국 축구가 보여준 모습에 국민은 열광했었다. 단순히 경기에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들은 그때 축구를 보며 한국이 기존의 암울한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점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것은 감격이었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 그리스 전에서 박지성은 다시 한 번 그런 종류의 감격을 느끼게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보여준 골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박지성은 경기장 중반부 근처에서 공을 잡아 단독 드리블을 해, 상대 수비수 두 사람을 제치고 여유 있게 골키퍼 반대편으로 골을 넣었다. 이런 건 세계 최고 선수들이나 보여주던 골이었다. 한국인은 월드컵에서 그런 모습을 못 보여줄 줄 알았다.
하지만 박지성은 해냈다. 몸싸움에서도 안 밀리고, 발재간에서도 안 밀렸다. 유럽인에게 주눅 들지도 않고, 그 찰나의 순간에 너무나 여유 있게 골키퍼 반대편으로 공을 차 넣었다. 한국인이 월드컵 무대에서 유럽팀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 전까지 한국 축구는 세계 강호를 만났을 때 개인으로는 맞서지 못했었다. 옛날엔 대포알처럼 ‘뻥’ 찼고, 2002년엔 조직력으로 맞섰다. 박지성의 골은 ‘뻥축구’에서 조직력의 ‘떼축구’로 진화했던 한국이 한 번 더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특히 더 감격적이다. 김연아에 이어 진화한 신인류 한국인의 모습을 또다시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골을 넣으면 당연히 흥분된다. 하지만 박지성의 골에서 터져 나온 흥분은 그 일반적인 흥분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아, 우리가 이젠 이런 것도 하는구나!’라는 감탄, 감격이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흥분 상태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경기 자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특히 더 좋았던 건 벤치에 한국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백인의 지도를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런 경기를 만들어냈다는 건, 한국이 완전히 자립해서 자신의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섰다는 걸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파멸적인 내전을 겪은 후 두 세대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나라에서 어느 부문에서든 성장을 확인하는 것은 감격이다. 박지성과 대표팀이 그런 감격을 선사해줬다. 축구 부문에서의 성장처럼 우리 사회도 청년실업, 양극화 등의 열패감을 ‘뻥’ 차버리고 성큼 성장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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